날짜 : 2014년 7월 27일 오후예배
요약 : 아름다운 동역을 하자
상황에 자족하는 법
이제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하는 편지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편지의 마지막이라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은 자신에게는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와 빌립보교회의 복음에 동참하는 동역에 감사함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에서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기쁨입니다. 본문은 이 기쁨을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주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이 말은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복음 사역에 처음부터 동참을 하였지만, 잠시 동참을 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돕기 위한 마음이 생겼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복음 사역에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때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위하여 항상 마음 다해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던 모습을 1장에 보았습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서로를 돕지 못하는 상황은 있었으나, 각자의 마음에는 항상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10절 후반부를 보면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계속 돕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돕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바울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도움이 없는 시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족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며, 배부름과 배고픔에 처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곧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러한 배움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러한 배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13절을 보면 바울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내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이 많은 오해를 받으며 사용이 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세상의 어떤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해를 하고 자주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이 어떠한 것도 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배부름과 배고품, 가난과 풍요로움의 상황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에 의해서 좌절을 하거나 기뻐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자신 앞에 놓여진 푯대를 행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이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바울에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게 된 능력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진보가 멈춰 섰다고 생각을 하지만, 바울에게 감옥은 전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은 시위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자신 앞에 놓여진 푯대를 향한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의 상황으로 인하여 푯대를 향한 목표의식이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복음을 전하는 시간 가운데 배우게 되었습니다.
상황에 자족하는 법
바울이 풍부함과 궁핍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어려움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할수 있다고 하는 말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당황스러운 말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마음은 있었으나, 바울을 돕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가 바울을 돕기 위하여 바울에게 도움이 될 것을 보냈는데, 바울은 고맙다는 말이 아닌, 후원금을 받지 않아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는 것 같으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후원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시간들을 통하여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4절을 보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환난에 같이 참여하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도움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의 환난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사역에 빌립보교회의 참여는 빌립보교회가 세워진 처음부터 함께하였다는 이야기를 이미 1장에서 보았습니다. 빌립보교회와 다르게 바울이 복음전파를 위하여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그 어떤 교회도 바울을 위하여 도움을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걷고 있을 때, 함께 하여준 곳이 바로 빌립보교회 입니다. 단순히 한번 도움을 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으며 함께 복음사역에 하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바울의 필요를 위하여 한 두번 쓸 것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빌립보교회의 도움을 바울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일을 성실히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의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돕는 빌립보교회의 모습은 감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돕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교회처럼 자신이 사역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동역자들이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 이유는 사역을 하는데 결코 열정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천막을 만들며, 복음사역에 필요한 금액을 충당하며 사역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복음 사역만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빌립보교회와 같은 후원은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이 사용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복음 사역에 더욱더 열중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복음 사역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후원은 바울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감사함을 느끼고 있으며, 그들의 후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더 많은 후원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배고픔과 배부름에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더 많은 후원을 해달라고하면, 앞에 한 말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7절에 자신이 후원을 구하기 위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후원금 등으로 인하여, 자신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후원금을 만들어서 보내주는 빌립보교회의 유익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후원을 하는 것으로 인해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생활에서 더 풍성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제물
18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이미 풍요로움에 있습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넉넉함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바울이 갖은 것이 많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자신은 풍요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성경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은 것 즉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온 것을 받아서 더 풍족하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더 풍족하게 되었으니 복음 사역에 힘을 더 내서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후원금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비록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것이 바울에게 갔으며, 바울이 사용을 하게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바울을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비록 후원금을 받아서 사용하는 주체는 바울이 되지만, 이것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18절에서 이야기처럼 자신이 넉넉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결코 넉넉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이 무엇이 넉넉하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 넉넉한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한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넉넉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받은 후원금은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을 19절처럼 후원을 하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필요를 채워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기도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아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치 은행 통장처럼 내가 천원을 헌금하면 이자까지 붙어서 나에게 돌아오는 그런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수고해주는 빌립보교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축복기도로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내용은 빌립보교회가 갖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충고와 복음의 사역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빌립보교회에 대한 감사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통하여 바울은 더욱더 든든한 동역자와 함께 복음사역을 통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가 마지막 인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21절부터 23절까지가 마지막 인사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에게 새로운 복음의 열매인 가이사의 집에 속한 자들을 소개합니다. 빌립보교회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으며, 이 사람들도 주 안에 한 형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복음의 사역에 함께하는 귀한 동역자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동역자의 모습이 성경에서만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도 지금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울과 빌립보교회와 같은 귀중한 동역을 할 수 있으며, 이미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귀한 동역의 관계를 깨트리지 말고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아름다운 동역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아름다운 동역의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시대와 다르게 살고 있지만, 우리들도 이들처럼 아름다운 동역을 하는 자들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동역을 통하여 한명이라도 더 많은 복음의 열매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이 기대가 우리들의 현실이 되게 하여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