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원본이 존재할까?
[개역개정4판] 마태복음 5장 18-20절/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7절을 보면 “율법이나 선지자들을”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 전체를 지칭하는 전통적인 유대교인들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궁극적인 목표를 완전하게(성취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에서는 선지자들을 뺀 “율법”이라는 단어만 언급합니다. 이것은 모세오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절의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말씀을 언급하셔서, 우리는 이 부분을 집중해보려 합니다.
먼저 2가지를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본문은 산상수훈(산에서 하신 설교) 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구약성경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둘째,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제1장 2번 “정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다”라는 고백에 대해 저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마태복음을 작성한 마태는 율법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글을 써내려가기 위해서 율법을 성경 전체로 확대하겠습니다. “성경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과 성경이 처음 쓰인 원본과 동일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잠깐 우리는 시간여행을 좀 해보겠습니다. 30여 년 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1990년대 초반) 갱지라는 회색 비슷한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갱지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A4용지와 비교하면 질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100년, 1000년 전의 종이를 생각한다면, 그 당시 종이의 질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2000년 전 쯤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저자인 모세가 언제 살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 열왕기상 6장 1절에서 힌트를 줍니다.
열왕기상 6장 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솔로몬의 즉위 제4년은 B.C. 966년경이며, 그때부터 480년 전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으니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이 됩니다. 모세는 120세에 죽었습니다(신 34:7). 모세가 모세오경을 작성한 시기는 대략 3500여 년 전입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기록한 종이가 지금도 있을까요? 당시 종이는 없었고, 양가죽을 활용한 양피지나 갈대 같은 것을 활용한 파피루스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내구성이 약하기에 그곳에 적혀 있는 내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글을 다시 작성해야 했습니다. 글을 옮겨 쓰는 사람을 서기관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겠지만 이 글에서는 ‘필사가’라 하겠습니다.
위에서 고백했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성경의 원래 저자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니 처음 작성된 것을 “원본”이라 하겠습니다. 원본은 오탈자나 잘못 작성됨이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필사본은 원본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필사본일까요? 필사가도 완벽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필사가에도 하나님의 영감을 주셔서 필사하게 하셨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필사는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필사가는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집중하고 아무리 신중하여도 실수는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완전하지 못한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필사가들은 필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이름(יהוה YHWH)이 나오는 부분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와서 필사를 했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필사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경외감을 가지고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몸에는 피로도가 쌓이게 될 것이며, 집중력도 떨어져 실수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입니다.
방금 본 예가 추측의 영역이라면, 역사 가운데서도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예가 있습니다. 4세기 기독교가 국가에서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을 때, 성경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훈련받은 필사가들은 작업실에 앉아 낭독자가 천천히 본문을 소리내어 읽으면 그것을 받아 적었습니다. 종종 필사가들은 순간적인 부주의(기침, 다른 소리 등)로 낭독자의 소리를 정확히 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렇게 필사가들은 불완전한 시력, 잘못 들음, 마음, 판단 등의 실수로 필사에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의 내용을 암기하여 구전으로 후대에 전달했다는 말이 있지만) 원본을 베껴 쓴 것을 1번이라 하고, 1번을 베껴 쓴 것을 2번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는 커질 것입니다. 6번 7번에서 잘못 베껴진 부분이 있다면 2번, 3번, 4번, 5번 등을 보면서 잘못 베낀 것을 찾아낼 가능성은 높겠지요. 하지만 ‘2번에서 잘못 베낀 것을 못 찾았다면’, ‘잘못 베겼다는 것을 46번에서 발견했다면’, ‘비슷한 글자를 착각해서 잘못 적었다면’ 등등의 여러 이유로 정확한 필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 원본에는 차이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원본을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고, 그러한 학문을 “사본학”이라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이 B.C. 1~2세기경에 작성된 사해 사본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이 원본과 다르다면, 우리가 보는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내용이 아닌 다른 내용으로 후손에게 전달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에 개입하시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비록 단어가 바뀌었을지라도)을 듣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어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그 권위가 있다고 선언하거나, 내가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권위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 스스로 권위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대반전도 있습니다. 아마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최초에 기록된 원본을 찾았다 하여도 우리는 그것을 지금 우리의 성경책과 바꾸거나 끼워 넣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야보고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며 평가절하(가치를 낮추는 의미) 하였습니다. 반대로 1976년 이집트의 골동품가게에서 유다복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다복음을 성경으로 받아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성경은 완성되었고, 종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66권 이외에 추가되거나 제외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은 성경이 원본과 동일하게 그대로 복사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모두 이루신다는 내용에 방점이 찍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