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323장
날짜 : 2016년 5월 22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서론
하나님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나 초심을 잃어버리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또한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기대를 갖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서 우리는 이미 엘리라는 제사장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부름 받은 자의 아쉬운 모습을 보며 우리들의 모습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1)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2)
1)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변명을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던 사울이 이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2) 사울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유는 백성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1)
1) 25절을 보면 사울은 여전히 백성을 두려워합니다. 백성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울 자신이 누리고 있는 왕의 자리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사무엘에게 정치적인 요청을 합니다. 그 요청은 사무엘이 자신과 함께 돌아가 백성들 앞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내용입니다.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과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면서 사울이 왕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더욱더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1)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2) 하고
1)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의 바람과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사울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2)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울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닙니다. 사울은 왕의 자리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도 부탁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사울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만 하나님은 사울과 함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1)
1)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말씀을 모두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를 떠나려 합니다. 그때 사무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느낀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그 옷이 찢어졌습니다. 왕에 대한 사울의 집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의 옷이 찢어진 것은 훗날 이스라엘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되는 모습도 연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관심을 갖는 나라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나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울과 사무엘의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이 서로 달라 사무엘의 옷이 찢어집니다.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1)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2)
1) 사무엘의 옷이 찢어졌을 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한마디 더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울보다 더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다는 말을 한번 더 이야기 합니다. 사무엘의 이미 13장 14절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사울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1)
1) 29절은 하나님의 특성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다르게 거짓이나 변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사무엘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고 그 계획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15장 11절의 내용에서 보았던 후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사울은 계속 왕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그들의 비유를 맞추려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사울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아졌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실질적으로 왕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1)
1) 돌아서 가려는 사무엘을 붙잡은 사울은 사무엘에게 다시 부탁을 합니다. 그 부탁은 자신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 자신을 높여달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여전히 왕의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왕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백성들 앞에서는 여전히 왕으로 남아있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어리석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1)
1) 사울의 부탁 때문일까요?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여호와께 경배하였다고 31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원하는 모습처럼 예배를 인도하는 모습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고 많은 학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함께 예배하는 장소에 있었지만, 사무엘이 예배를 인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전쟁에 승리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예배에 사무엘이 참석하였던 것입니다.그리고 그 예배에 참석한 이유를 32절과 3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2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1) 예배가 마쳐지자 사무엘은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한 왕의 모습이 이상합니다. 아각은 즐거운 모습을 보며 사무엘 앞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은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각의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70인경을 보면 “아각이 두려움으로 사무엘에게 나아왔다. 아각은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괴로운가라고 말했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3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1)
1)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게 된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각을 처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무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이집트)을 나와서 광야에서 길을 걸을 때 뒤에서 힘없어 뒤처지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비열한 모습을 보였던 민족입니다. 그 민족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의 마무리를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맡기셨는데, 사울은 순종하지 않았고, 그 마무리를 사무엘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1)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2)
1) 이렇게 마무리하고 사무엘은 자신이 있었던 곳 라마로 돌아갑니다.
2) 사울도 자신의 집이 있는 기브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1)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2)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3)
1) 성경은 사울과 사무엘의 마지막 만남이 이렇게 끝이 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19장 24절을 보면 라마에서 한번 더 사울과 사무엘은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큰 의미에서 동역자의 개념에서는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은 마지막입니다.
2) 사울과의 마지막에 대하여 사무엘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였고,
3)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 하셨습니니다. 전에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후회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사울과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유다입니다. 유다가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은 계획이 있었고, 그래서 유다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유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불러주신 예수님의 기대와 다르게 제자의 삶을 끝까지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겨,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를 부르셨지만,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유다에게 단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제자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며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마태복음 26장 24절_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초심을 잃어버린 유다에게 예수님은 경고하시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자신이 부른 제자라 할지라도 그가 초심을 잃어버렸을 때, 그를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결론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꼭 전도사가 되어야하며, 목사가 되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을 우리는 ‘성도’라고 표한합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의 삶은 내 뜻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우리의 모임에서는 규모가 작다보니 어린이, 집사, 학생, 목사, 사모의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 가운데 각자의 직분을 부여받아 그 직분에 맞는 성실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초심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큰 기쁨과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기쁨과 감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을 생각해야 하며, 그때 다짐하였던 그 다짐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감격이 잊혀지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은혜를 바라보는 시점이 변하게 됩니다. 한국교회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직분입니다. 직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능력대로 직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관점이 변하면, 그 직분이 하나의 계급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목사니, 나는 장로니, 나는 권사니 힘을 가졌다 생각하거나, 그 자리에 올라가야 나의 명예가 높아지는 거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은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에서 사울의 모습처럼 직분을 통하여 누리는 것이나 명예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초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을 하루하루 생각하며 그 다짐대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뭔가 다른 것을 하려 하지 마세요. 저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던 그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여주시고,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기쁨과 감격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않게 해주시고, 우리의 삶에서 항상 그때의 초심으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저희들이 초심을 잃고 하나님의 곁을 떠나버리는 삶을 살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시며 저희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여 주세요.
도와주실 것 믿고,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초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모든 이들의 삶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