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3:1-12
찬송 : 301, 449
날짜 : 2014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
요약 : 사명을 제대로 알고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자

유대광야에서 요한(1-3)

마태복음의 이야기 전개상으로 예수님께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살고 계실 때, 요한이라는 사람이 유대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중요한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이 요한이라는 사람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에서 마리아의 사촌인 엘리사벳의 아들입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아서 어느 누구도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태어난 사람입니다.

요한의 출생을 예수님과 비교를 해보자면 예수님보다 1년 정도 일찍 태어난 사람입니다. 또한 천사가 그의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와서 요한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이야기 하는 장면이 누가복음 1장 14-1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개역개정]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바른성경]

그 아들이 네게 기쁨과 즐거움이 될 것이며 많은 이들이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결코 마시지 않을 것이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들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주님보다 앞서 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여, 백성들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할 것이다."

누가복음의 내용을 보면 요한은 사명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마태복음 3장 11절을 보면,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유대광야에 나가서 말씀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유대광야에서 전하고 있는 말씀의 포인트는 2절에서처럼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요한이 전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그보다 더 앞서서 요한이 이러한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정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바로 3절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 입니다. 그 말은 요한을 가리키면서 한 말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사역(4-10)

이렇게 구약에서 선지자 이사야 한 말이 요한을 말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성경은 요한의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요한의 모습은 4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이런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보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입니다. 이번에는 열왕기하 1장 8절을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개역개정]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바른성경]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기를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다." 라고 하였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아가 자신의 병에 대하여 에그론의 신 바엘세붑에게 병이 낫을지를 물어보기 위하여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서 어느 한 사람이 그들의 길을 가로 막고 아하시아는 병에서 낫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돌려보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이 때 그 말을 한 사람의 외모를 설명하는데, 아하시아 왕은 그가 바로 엘리야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다시 요한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그가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하고 있는 모습은 그 당시 사람들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엘리야를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억에 마지막 선지자로 자리 잡고 있는 말라기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 선지자가 여호와가 정하신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한 명의 선지자를 보내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말라기 4장 5절입니다.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개역개정]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바른성경]

"보아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 엘리야를 보낼 것이다.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날 한 명의 선지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그 사람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엄청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광야에서 요한이 엘리야의 모습을 하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도 말라기가 예언하였던 내용과 동일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요한이 기다리던 엘리야라 생각하고 그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도 요한의 이러한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인물을 소개할 때 그의 외모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쉽게 등장하지 않는데 요한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또한 우리처럼 요한을 직접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엘리야의 모습을 요한을 통해 쉽게 연상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광야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도 요한을 찾아옵니다. 요한이 있는 광야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도시의 중심지가 아닌 외곽의 한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즉 요한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오기 위해서는 시간과 수고로움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과 수고로움을 투자하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요한을 찾아온 것입니다.

당시 비록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종교지도자 집단으로 경쟁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으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며 사람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말로 쉽게 말하면 존경받는 높으신 분들이 요한을 찾아 온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찾아오면 그들을 잘 대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을 잘 대접하기 보다는 7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으로 그들을 비난 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한 요한의 비난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는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어서 너희들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한시라도 빠른 회개를 요구합니다. 그 이유는 10절에서처럼 심판의 날이 이제 곧 다가오게 되어 있으며,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들은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대중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인기를 받고 있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며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아닌 종교지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과 예수(10-12)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면서 이상하게도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종교지도자들까지 비난을 하고 있는 요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이러한 거침없는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요한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고, 실제로 요한의 제자들도 생기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은 11절부터 사람들이 듣기에 충격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 곧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믿고 있습니다. 지금 본인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고 있지만, 자신 다음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넣으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 뒤에 오시는 분과 요한 자신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이때 사용한 비유가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 자신은 그의 신발을 드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작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요한은 자신을 향한 인기와 관심을 자신이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 뒤에 오실 분에게 돌리며, 사람들이 그분을 더욱더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요한은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요한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결론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요한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많은 생각과 결심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였으면 합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정확히 알고 그 사명에 맞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분에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시지도 않고 하시는 말씀이 “그게 정말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맞을까요?”라며 저에게 반문을 하더군요. 그분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그 분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해주는 말입니다.

정말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며 그것이 맞는 말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원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닌 행동을 보면, 우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려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는 알지 몰라도 그 사명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이해 할 수 있는 뜻으로 다시 정의 내려야 합니다. 꼭 애매한 것을 정의해주는 애정남이 된 것 같습니다. 먼저 사명이라는 것은 내가 찾거나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기에 우리는 사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모세처럼 자신을 생각 했을 때 자신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 사명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너무나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 또는 내가 이루려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착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명은 내가 결과물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잘못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그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본 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였지만,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이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모습 등을 보지 못했습니다. 요한과 2000년이 넘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우리들도 아직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내가 그 사명의 결과물을 경험하거나 내가 마무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의 결과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셋째, 사명을 통해서 내가 얻는 유익이나 불이익에 너무 큰 관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함으로 인해서 내가 얻는 유익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내가 얻는 유익이 없다고 하여 내가 사명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받은 사명자의 삶이 때로는 쉬울 수도 있고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일이 쉽지 않을 때, 나는 그 사명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보았던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과정 가운데 왕의 눈 밖에 나면서, 감옥에 갇히고 허무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면서, 자신이 헤롯왕에 대한 일을 예상하지는 못하였을지 몰라도, 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으로 인한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뒤에 있을 파장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집중하였고 그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명은 내가 결정하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명을 열심히 오랜 시간 동안 감당하였을지라도 그 결과물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통해 내가 얻거나 잃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사명 자체에 관심을 갖고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금연, 운동, 여행과 같은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알차고 보람차게 한해를 보내기 위해서 많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제대로 알고, 그 사명에 맞는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2015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나의 계획을 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에 먼저 그리고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항상 우리와 그리고 저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와 저에게 주신 사명을 제대로 알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2015년 이 1년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관심을 갖는 한해가 되기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늘 기억나게 해주시고, 그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하나님의 자녀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길 바라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늘 함께 할찌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