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199장
날짜 : 2016년 5월 1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의 후회는 새로운 시작이다.
서론
오늘은 본문을 사무엘 15장 10절과 11절 두절만 보려 합니다. 실질적으로는 11절 한 구절만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회가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
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1)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2)
1)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에 대하여 후회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후회라는 말씀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도 잘못하시는가? 그래서 후회를 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하나님도 마음 변하시는 건가? 등 이외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난처한 상황을 만듭니다. 그 이유는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시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말씀의 뜻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후회라는 것이 “매우 많이 슬퍼하셨다”는 내용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적혀 있는 내용은 우리가 지금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성경의 내용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서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입니다. ‘신’은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못하는 영역을 신은 일상처럼 할 수 있습니다. 신과 인간의 능력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렇다보니 인간은 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한계는 우리가 나 자신을 봐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 나의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 하지만 그것이 안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와서 예배드릴 때 난 예배 졸지도 않고 말씀도 잘 듣고 은혜 받아야지”라는 결심을 하고 왔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딴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들은 무언가를 해보려하지만 그 한계에 너무나도 빨리 직면하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꼭 신과 인간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교육을 받았다할지라도 그 가운데 이해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들어도 이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능력이 없다. 실력이 없다. 머리가 좋지 않다 등등의 표현으로 우리들의 한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것들입니다. 원래 인간은 세상의 작은 것 하나를 보고도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면서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에 세상의 작은 것 하나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하는 어리석음까지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한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느 유명한 물리학자가 이 자리에 와서 햇빛이 어떤 과학적 원리에 의해서 따듯해지고 그 빛을 받는 식물들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성장해 가는 내용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들이 매우 정확하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물리학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우리는 이해하지 못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 범위에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설명하신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눈높이 맞게 하나님 자신을 설명하십니다. 그 가운데 하나의 방법이 하나님을 인간과 동일시하여 우리들에게 설명하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신인동형론’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눈이나 손이 있는 듯한 표현과 인간처럼 질투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후회하는 듯한 표현을 성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눈] 잠언 5:21 /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여호와의 손] 사무엘상 12:15 /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질투] 출애굽기 34:14 /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분노] 호세아 13:11 /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슬픔] 예레미야 8:21 /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표현은 이곳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성경책인 사무엘하 24장 16절과 창세기 6장 6절에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후회] 창세기 6:6 /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우리가 본문으로 본 사무엘상 15장 11절에서는 ‘후회’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고, 창세기에서는 ‘한탄’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동일한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눈높이로 수준을 낮추어 하나님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말씀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먼저 창세기 6장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후회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를 홍수로 쓸어버리시고 노아를 통하여 새롭게 시작하기 원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하나님의 후회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후회를 하셨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실 정도로 세상이 죄로 물들었을 때 그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는 것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의 배경은 창세기 6장 5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6:5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희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풍족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망과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죄악으로 채워버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후회하심으로 인류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회하심으로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찬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 가득 차는 시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본문으로 보고 있는 사무엘상 15장을 보겠습니다. 15장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투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이라는 것을 우리는 전 시간에 함께 봤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을 보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후회를 하시나?”라는 고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읽고 우리는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 새로운 시작은 사무엘상 15장 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8절 /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보다 맘에 드는 새로운 사람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실 것입니다. 새로운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처음 왕이 등장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사무엘상 8장 2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을 보호하는 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왕의 모습을 보며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기에 다른 나라의 왕들과 달라야 합니다. 13장의 내용을 보면서 언급이 되었던 ‘나기드’와 ‘멜렉’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십니가? ‘나기드’는 ‘지도자’로 번역이 되며, 멜렉은 ‘왕’으로 번역이 됩니다. 왕은 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구하였던 왕의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명령을 받는 자’라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4절에서 사울의 왕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에서 사울은 왕으로 표현이 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왕이 아닌 ‘지도자’로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왕들이 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는데, 사울은 그 마지막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후회가 언급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이, 새로운 희망이 오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2)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였다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 단어의 뜻은 분노하였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분노를 하였을까요? 이때 사무엘이 분노한 대상이 사울을 선택하신 하나님인지, 기회를 3번이나 주었지만 기회를 붙잡지 못한 사울인지,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고 사무엘이 분노했다는 말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서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무엘이 분노한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 이유는 왕이 등장하면서 사무엘은 이전처럼 단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모든 일들을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과 함께 진행해야 합입니다. 이 내용은 사울이 처음 사무엘을 찾아왔을 때, 우물가의 여인들과 사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9장에서 살짝 언급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등장하면서 선지자와 왕은 결혼한 남녀의 관계처럼 친밀하게 한 쌍의 짝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합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행동이 아닌 항상 함께해야 하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말은 사무엘이 활동은 사울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8장에서 사무엘은 왕 세우는 것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무엘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에 왕이 등장하는 것에 반대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라 하셨고, 사무엘도 사울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많은 기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은 이렇게 왕이 된 사울이 안타깝게 너무나도 빨리 실패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에 후회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무엘은 왕의 등장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을 설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을 설득하셨던 하나님께서 후회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빨리 마음을 돌이키시는 것에 대하여 사무엘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고 화가 났던 것입니다. 물론 후에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사울보다 더 나은 이웃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며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함께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활동은 다윗시대에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무엘의 유일한 동역자는 사울입니다. 사울은 온 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냅니다. 사무엘의 기도는 사울을 향한 기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무엘도 사울을 처음 만났을 때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사울에게 많은 기대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하였던 인물이 안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슬퍼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무엘의 목자적 마음을 보게 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후회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예수님을 생각해보면 어떠한 것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후회를 하심으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난다는 것에 집중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하여 세상의 인류는 죄의 그늘 아래가 아닌 하나님의 품에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시작 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심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표현입니다. 이 사랑표현으로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6장에서 후회하시며 의인으로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시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성경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에게 실망을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표현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도 잘 못된 결정을 내리시고, 실수를 하시는 분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을 갖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습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우리에게 좋은 뜻으로 선물을 하였는데, 그것을 오해하여 그 사람에 대한 불신이나 오해를 갖는다면, 좋은 뜻에서 선물을 한 사람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성경을 읽으며, 성경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면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들과 나의 분주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려는 자가 되게 하여 주세요. 주를 믿는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에 대해여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지로 하나님을 오해하며 살지 않게 하여주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가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세요.
도와주실 것 믿고,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기 원하는 모든 이들의 삶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