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3:17-4:1
날짜 : 2014년 7월 13일 오후예배
요약 :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으라

나를 본 받는자가 되라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 받고, 우리 즉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본 받으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의 이런 말은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마치 사이비 교주들이 자신을 잘 섬기라고 이야기 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말은 이러한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아닌지 알겠는데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말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를 계속 강조하며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문의 바로 앞에서 자신의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되었기에,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 하였습니다. 또 2장에서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1장에서는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이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 자신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좇아가는 모습을 본 받으라는 말로만 단순하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7-8절을 보면 바울은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였던 것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며,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자신의 행동 그 어떤 것도 자랑하거나 권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본 받으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 바울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가 닮아가길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으라는 것이지요.

이처럼 바울이 3장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으니 자신의 모습을 본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바라 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며 하는 말

이렇게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눈을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합니다. 이 내용은 3장 1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여러 번 하였던 말입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슷한 말을 2장에서 말을 하였습니다. 2장 2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은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말과 연결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앞에서 보았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를 무너트리려는 개들, 행악을 하는 자들, 거짓할례자들이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유익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19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신은 배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배불리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결국 자신들의 육체적인 욕심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고 바울을 도왔던 모습과 비교가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갖지만, 또 다른 특징은 자신들의 영광에 관심을 갖습니다. 세상은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을 때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구하는 영광은 부끄러운 것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결코 영광스럽지 않은 것들을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 주겠습니까? 우리들이 단순하게 생각을 해도,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거리를 두고 싶어 하고,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영광스러움이 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억지로 영광이라는 것을 만들려다보니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을 얻으려하게 됩니다. 그 모든 과정 과정들이 부끄러운 것이지요.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밝혀진다면 그들은 바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그들이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얻는 과정이 부끄럽기 때문에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땅의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잠시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의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자신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잠시 살다가 가는 이 세상의 삶 이후 모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 세상의 것들에만 관심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이 없기에 그들은 결국 멸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멸망이라는 것은 사업과 같은 것에서 실패를 하였다는 개념과 전혀 다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살다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기에 결국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가지려고 평생을 고생하며 모았던 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멸망의 개념을 바울은 구원의 반대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이 옳은 것이라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주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그들의 마음을 흔들려고 할지라도, 맘이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공격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을 떠나게 되었을 때,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꼭 기억하라는 간절한 마음에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며, 눈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늘 시민권 자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믿음 흔들리지 말고, 하늘 시민권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말을 합니다. 하늘 시민권자는 비록 지금 땅에 살고 있지만, 결코 땅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울의 이 표현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빌립보도시의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빌립보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는 빌립보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빌립보도시는 다른 나라나 도시와 같이 로마의 식민지가 아니라 로마와 동등한 위치로 올려놓았습니다. 비록 빌립보라는 도시가 로마가 아니고, 로마와 떨어져 있는 도시지만, 로마의 법에 의해서 통치되고, 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바울은 이러한 개념을 가져와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들은 비록 지금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하늘에 속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십자가의 원수들처럼 땅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흔들리지말고 하늘의 시민권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 살다보니 땅의 것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과 비교를 하였을 때, 그들의 모습이 더욱더 좋아 보이고,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기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모든 것을 보상해주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보상해주시니 그때까지 하늘에 속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지요. 21절을 보면 하늘로부터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능력을 갖으신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능력이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우리 모두를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 시키실 것이라고 바울이 이야기를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의 모습이 지금은 화려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날 그들의 모습은 멸망이기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늘에 속한 사람의 모습으로 믿음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하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과 하늘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이기에 믿음 흔들리지 말고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늘 시민권자의 합당한 삶의 모습은 바울이 자신을 본 받으라며 바라보게 했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모습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우리들의 모습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어디에 관심을 갖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나의 욕심을 위해서 열심히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하늘에 속한 시민권자라는 생각을 정확히 하고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저도 바울처럼 이야기하며 마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늘에 속한 시민권자들입니다. 그러니 내 욕심에만 사로잡혀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시민권자에 합당한 모습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 오시는 날 웃는 우리가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먼저 다가와 우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분의 순종과 헌신으로 우리가 누리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큰 힘을 사용하셔서 강압적으로 선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에게 결정권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올바른 선택을 통한 바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세요. 우리의 선택은 하늘나라의 시민권 자처럼 사는 삶입니다. 이 마음 변치 않게 해주시고, 세상의 끊임없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만나 뵙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이 땅에서 하늘의 시민권자의 모습으로 살기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이들의 삶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