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3:12-16
날짜 : 2014년 7월 6일 오후예배
요약 : 성화(온전함)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이 성도들의 삶

본문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은 자신이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이미 얻었다 함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이 아닌 것은 바울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르고자 하였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계속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그분의 고난에 동참을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바울은 율법적으로 흠이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율법주의자이며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너무나도 큰 열정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무리 곧 교회를 탄압하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하였습니다. 이랬던 바울이 오로지 교회 탄압을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길을 가던 중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바울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빌립보서에서 사용한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이렇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며 평생을 살았지만, 아직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도 크신 분이시기에, 너무나도 작은 인간이 그 분을 다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가끔 조금 알고 있다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들의 반응은 그 사람이 대단해 보이기보다는 교만하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아무리 바울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 바울도 인간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예수를 알고자 하는 마음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앞에서 말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을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고난에 동참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에 이르기 위함이라고 11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 위해서 자신은 과거에 자랑거리이며,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자신의 업적들을 모두 버리고, 내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잡으려고 합니다. 바울의 과거 업적들을 버려야만 하는 이유는 7-8절처럼 이것들이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며, 배설물과 같이 의미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향한 과정의 끝에 있는 것을 푯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문맥상 14절에서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간다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마치 달리기를 하는 육상선수의 모습으로 이야기 합니다. 육상선수는 결승지점까지 최선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는 그곳을 통과하였을 때,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치 자기 자신이 이런 육상선수와 같은 상황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최선을 다하며 동참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이유는 결승점에 도달하였을 때, 즉 예수 다시 오시는 그 때에 자신에게 구원이라는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은 모든 것을 이룬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기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바울은 자신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지만,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온전하지 못하지만,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온전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온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가 어리다고 하여서 우리는 그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직 어리지막 엄연한 사람입니다. 성인에 비하면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존재이지만, 어리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아직 연약하기에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상황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온전히 이룬 자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인으로 볼 수 있는 바울이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면, 그러니 온전히 이룬 자이지만 아직 어린아이인 빌립보교회의 성도들도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과정은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등장하여 할례를 주장할 때, 바울은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할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은 구원은 확정이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막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번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며 살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달리기에서 결승점에 도착을 해야지만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구원은 내가 만들어 놓은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믿음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업적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려는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구원에 이르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에 나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니,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보다 많이 앞서 있던 바울이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 위해서 노력하였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 노력하겠습니다. 이 마음 변치 않게 지켜주시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결심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