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14:1-23
찬송 : 324장
날짜 : 2016년 3월 6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관심을 갖고 결과도 하나님께 맡기자.

서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 주어지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과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나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만 같은 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1) 하고 그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2)

1) 블레셋과의 전쟁은 요나단의 기습공격으로 시작이 되었으며, 14장에서는 요나단이 그들을 치고자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 요나단의 아버지인 사울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요나단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2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1)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2)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1) 고대전승에 따르면 미그론은 기브아 성문 밖에 위치한 타작마당 입니다. 이곳에서 종종 마을의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2) 그런데 사울이 미그론에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두려워하고 있는 블레셋과 전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드보라처럼 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재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1)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2)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3)

1) 사울이 석류나무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 아히야의 등장입니다. 아히야는 에봇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봇은 종종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울은 미그론에서 재판을 집행했다기보다 점술을 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여기에서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점술을 치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히야 때문이다. 아히야는 이미 버림받은 엘리 제사장의 후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히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사울은 사무엘이 아닌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사울이 점술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요나단은 블레셋과 전쟁을 이어갑니다.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1)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1) 이 두 봉우리는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두 진영에서 서로를 볼 수 있었으며, 소리를 지르면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단의 전술이 너무나도 무모한 전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1) 우리가 이 할례없는 자들2)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3)

1) 요나단은 병기든 소년을 설득합니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비하할 때 사용하였던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히브리사람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말입니다.

3) 요나단도 자신의 무모한 행동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1)

1) 병기든 자는 요나단의 말에 설득당하고, 요나단을 따르기로 합니다.

8 요나단이 가로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 게 보이리니

9 그들이 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1)

1) 10절과 함께

10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1)

1) 요나단은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하나님께 구한 표징이 나타날 때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도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믿음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1 둘이 다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1)

1) 블레셋 사람들은 요나단와 그의 무기든 자가 나오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조롱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병사들은 전쟁에 참여하기보다는 도망가고 숨기 바뻤기 때문에 이들은 이런 조롱으로 요나단을 맞이합니다.

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 병기든 자를 대하여 가로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이리라 한지라1)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2)

1) 요나단은 하나님의 표징을 구했는데, 블레셋 사람들의 말에 요나단이 구한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2) 그래서 요나단은 이번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게 됩니다.

13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1)

1)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가 쓰러지면 병기든 자가 그들을 죽이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병기든 자는 자신의 역할이 충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14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1)

1) 요나단은 반나절동안 블레셋 사람들 20명을 죽이게 됩니다. 요나단이 죽인 숫자가 적을지 몰라도 이 사건은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15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1)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2)

1) 요나단의 행동으로 블레셋군대는 떨게 되었습니다.

2) 그리고 땅에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요나단의 행동에 겁을 먹었다기 보다는 요나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요나단의 무모한 행동으로 작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단과 함께 하시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단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 블레셋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숫군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더라1)

1) 요나단의 승리로 인하여 발생한 상황이 이제 사울의 부대에게도 소식이 전해집니다.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 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1)

1) 점술을 치고 있던 사울은 이제야 요나단이 블레셋군대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1) 사울은 아히야에거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합니다. 여기에서도 사울은 점술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머물다가 다윗의 때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70인경을 보면 사울이 가져오라 한 것은 하나님의 궤가 아닌 그가 가지고 있었던 에봇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이런 모습은 요나단의 모습과 비교가 됩니다. 요나단은 믿음과 확신으로 행동을 하는 반면, 사울은 불안한 마음에 무엇이든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1)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1) 사울은 블레셋 진영에서 더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0 사울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1)

1) 적들이 혼란 가운데 서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친해 싸우실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1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1)

1) 이스라엘 진영에 있다가 도망가거나 블레셋군대에 합류하였던 히브리 사람들도 사울의 군대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블레셋 군대는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1)

1)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산지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전쟁이 한순간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환이 되는 상황입니다.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1)

1) 요나단의 믿음과 확신으로 전혀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으므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종교지도자들과도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십자가에 길을 걸어가셨으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모든 일에 자신의 사명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셨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그러나 이 둘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게 그려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들의 모습 가운데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현실로 바라보고 있었던 상황이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 올 것입니다. 누가 봐도 안될 것이라는 일이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과 저는 어떤 행동을 하셨습니까? 또는 어떤 행동을 하실 것입니까? 사울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 통로인 사무엘과 결별하고, 이미 버림받은 아히야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과 다르게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표징을 구하였고, 그 표징이 보여질 때, 확신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이때 요나단의 확신은 자기 자신 또는 누군가로부터의 확신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확신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사울과 같은 행동을 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내가 모든 계획을 다 세워놓고, “하나님 이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더 영광스럽게 될 것 입니다”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내가 듣고자 하는 말을 듣기 원하는 사울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요나단처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관심이 있어야 하며, 그 말씀에 결과를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나의 욕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들의 일상에서 정말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내가 듣고, 내가 갖기 원하는 결과에 집중하지 않게 하여주세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 모두의 결과를 맡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세요. 물론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결정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해주시고,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여주세요. 성령님께서 꼭 함께 해주셔야지만 가능하니 성령님 우리들을 인도하여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과에 감사하며 살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