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13:1-23
찬송 : 406장
날짜 : 2016년 2월 28일 주일예배
요약 :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자.

서론

우리들은 세상에서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실력이 뛰어나지도 못하고, 영향력 있는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아내와 그의 가족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부러지게 잘하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약한 자에게 한 없이 강하고, 강한자게 한없이 약합니다. 이런 세상에 저라는 사람은 좋은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런 힘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힘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와 같이 자기 자신이 힘없고,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본문

1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2)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3)

1) 원문에는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살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을 2년간 다스렸다’ 원문 그대로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원문이 유실되었다는 쪽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2) NIV성경은 30세로 번역하지만, 40세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하 5장 4-5절을 보면 다윗이 30세에 유다왕이 되었고, 이스보셋이 죽자 37세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스보셋이 죽을 때 나이가 42세였으므로, 다윗은 이스보셋보다 5살 어림셈입니다. 요나단이 이스보셋의 형이라고 가정한다면, 다윗과 요나단의 나이는 10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13장의 사건이 사울이 왕이 된지 얼마 안되어 발생했고, 사울의 군대장관인 요나단은 20세는 되었으니, 그의 아버지 사울은 40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3) 다윗이 유다왕이 된 30살 때 사울은 죽었으므로,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린 시간은 20년 정도로 계산 가능합니다. 다스린 2년 앞의 십의자리 숫자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면 사울이 이스라엘은 22년 다스렸다 할 수 있습니다.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1)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1) 사사시대까지 없었던 직업군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에 동원된 인원은 이보다 더 많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참여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1)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2)은 들으라 하니

1) 블레셋 군대를 요나단이 먼저 공격합니다. 사울은 10장 7절에서 블레셋을 치라는 사무엘이 전달한 사명을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일을 아들인 요나단이 하고 있습니다.

2)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은 이방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비하하며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사람으로 지칭하는 사람이 사울입니다. 이때 히브리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함께 나온 도주한 노예들,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범죄자들의 후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1)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1) 표기된 숫자는 과장되었다 볼 수 있지만, 해변의 모래 같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큰 군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1)

1)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의 군대 규모를 알고 겁에 질려 전쟁에서 이탈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얼마나 두려워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1)

1) 사울을 따르던 백성들은 탈영하기 시작하였고, 사울과 함께 있는 병사들도 떨고 있습니다. 7절 끝부분은 ‘모든 백성이 사울을 따라 떨더라’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울은 사무엘의 첫 사명에 순종하지 못하였던 것이 블레셋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사울은 여전히 블레셋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1)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1) 사울은 7일 동안 사무엘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길갈에서 7일을 기다리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길갈에서 7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울이 10장 8절의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첫 번째 사명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을 생각하며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방문은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1)

1) 사무엘의 방문이 늦어지고 백성들은 전장에서 이탈하고 있기에 사울은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1)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2)

1) 사울이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도착하였습니다.

2) 이때 사울은 사무엘을 맞이하며 인사합니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1)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의 인사조차 받지 않고 바로 책망을 시작합니다.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1)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 사울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변명을 시작합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1)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 사무엘은 사울이 큰 실수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왕이 직접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왕은 제사를 직접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방 왕들이 하는 방식이며, 이스라엘에서 제사는 선지자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과 다른 나라 왕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9장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세우실 때 하신 말씀에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가 아니라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지도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기드’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명령을 받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 단어입니다. 왕이라는 단어는 ‘멜레크’라는 단어입니다. 다른 나라의 왕은 자신이 ‘신’ 또는 ’신의 아들’의 개념으로 백성을 다스리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그러한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왕이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나기드’적인 모습이 아닌 다른 나라의 ‘멜레크’의 모습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1)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2)

1) 사울의 잘못된 행동으로 그 왕조가 곧 사라지 될 것을 선포 받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왕(멜레크)가 아닌 지도자(나기드)로 삼로 삼으시겠다 선포합니다.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1)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2)

1) 사무엘은 사울의 왕조가 곧 망하게 될것이며, 사울을 크게 책망합니다. 그런데 15절에서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로 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70인역에서는 15절을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자기 길을 갔고, 나머지 백성들은 사울을 따라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갔다”로 기록합니다.

2) 사무엘과 사울이 갈라지는 시점에 사울을 따르는 군대의 숫자는 600명가량 됩니다.

16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17 노략꾼들1)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1) 블레셋군대의 일부는 세 대로 나누어 압박해 오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략질을 합니다.

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

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1)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1) 이스라엘에는 철공이 없었다는 말은 이스라엘에 철제 무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병사 수만큼 중요한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돌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무기였습니다. 청동무기와 철무기가 서로 부딪히면 청동무기는 끊어져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군대의 숫자에서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서도 열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1)

1) 번역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번역은 “괭이나 삽이나 삼지창, 도끼나 쇠채찍 등을 벼리는 데 삼분의 이세겔이다”입니다. ‘벼리다’의 뜻은 무뎌진 것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농기구 하나를 벼리는데 3분의 2세겔이면 많이 비쌉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폭리를 취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1)

1) 이스라엘에게도 철무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울과 요나단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23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1)

1) 믹마스는 사울의 군대가 진치고 있는 게바를 가르는 깊은 협곡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떨고 있던 블레셋군대가 그들의 왕과 전면전을 곧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항한 믿음이 크게 있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사역은 기존의 영향력이 있고 힘이있는 사람들과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나보다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당당하셨습니다. 모함으로 잡혀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당하실 때도 당당하게 자신의 왕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오늘의 본문은 사울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사건 시작은 사울이 아닌 요나단으로 시작이 됩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군대를 선제공격하면서 블레셋을 자극하였고,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치르기 위하여 바다의 모레알과 같이 많은 숫자의 군대를 가지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쟁을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9장 16절에서 지도자를 세워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요구를 받으들이시며 세우신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사울왕의 존재 이유는 블레셋과의 전쟁인데,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의 아들인 요나단의 블레셋을 선제공격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요나단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말을 성경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요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에게 말씀하셨던 블레셋이라는 강한 군사력의 나라를 선제공격하는 모습과 후에 하나님께서 그의 맘에 맞는 사람이 다윗임을 알고 그와 우정을 나눕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요나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사울은 블레셋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무엘의 첫 사명언급에 대해서 사울은 침묵하였고, 본문에서 블레셋 군대를 보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번제까지 집행합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 요나단입니까? 사울입니까? 불신앙의 다른 단어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작다보니 세상의 것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이고, 하나님으로 인해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현실이라는 벽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우리의 삶에서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더 많다보니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함께 도전해 봅시다. 함께 시도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더 크신 분이시며, 나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이기며 살아 갈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갑시다. 예전의 모습이 어떠하였든 앞으로의 삶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행동하며 살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이 세상은 약한 자에게 한 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한 없이 약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에 뭐하나 내세울 것이 없고, 우리들이 계획한 뜻대로 진행되는 것 하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또한 너무나도 많은 무시, 포기, 자포자기를 하면서 이러한 것들에 우리 자신이 무뎌져 내 자신이 약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것도 알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모두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큰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그 무엇보다 더 크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세요. 우리가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의 삶을 변화 시켜주시고, 그 변화가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해질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세상에 영향력이 있게 하여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