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3:1-11
날짜 : 2014년 6월 19일 오후예배
요약 : 나의 행동으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믿음)으로 이루어 지는 것

서론

거짓 할례자를 주의하라

바울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과 함께 이전에도 여러 차례 이야기 하였던 내용을 다시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반복적인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 수고로울 수 있는 일지만, 바울은 전혀 수고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이런 것이 수고롭지 않은 이유는 반복되는 이 이야기가 중요하고, 믿음의 방파제와 같은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의 시작은 손할례당(거짓 할례자)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개들, 악행 하는 자들, 거짓할례자(손할례당)을 주의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세 부류의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한 무리인 거짓할례자(손할례당)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한글성경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원문인 헬라어 성경에서는 처음에 시작하는 글자가 동일합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최신 핸드폰, 최신 전화기, 최신 의자”처럼 이렇게 동일한 문자로 시작을 하면서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거짓할례자들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개들은 현대인들이 집에서 많이 기르고 있는 애완용 개들이 아니라, 주인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이런 개들은 더럽고, 냄새가 납니다. 그러면서 이런 개들은 함께 있는 사람과도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이렇게 더럽고 냄새가 나는 개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됩니다.

개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개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품위나 인격을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개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음으로 인하여 의도를 하였든 하지 않았든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악행을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더러움으로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개처럼 누군가를 망치게 하는 자들을 거짓 할례자(손할례당)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거짓 할례자들은 할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사람들에게 할례라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것에 대한 징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거짓 할례자들은 빌립보교회에서 할례를 강요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돌아다니면서 할례를 받아야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무리들이 빌립보교회에도 등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의 증표인 할례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개, 악행을 하는 자, 거짓 할례자라고 말하며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할례만 받으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내가 나의 힘으로 무엇을 했으니, 내 할 일은 끝났고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의를 보여야 할 차례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할례자라고 정의합니다. 내가 할례를 했는지 안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신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참 할례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자들이 참 할례자라는 것입니다.

내게 유익했던 것을 해로 여김

그러면서 바울은 자연스럽게 자신도 거짓 할례자들처럼 생각하며 살았던 과거의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어떤 업적이(여기에서는 할례입니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짓 할례자들의 주장처럼 바울도 자신이 가지고 있고,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업적으로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생각하였습니다.

5절부터 시작이 되는데요. 바울은 태어나서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면 8일 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들의 조상인 이삭이 그렇게 하였고, 레위기 12장 3절을 보면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진행 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셔서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을 알고 개종을 한 사람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순수혈통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는 야곱의 막내 아들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베냐민은 약속의 땅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베냐민 지파였으며, 유대민족이 이방인에 의해서 전멸이 될 뻔 한 위기에서 민족을 구한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또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될 때, 다윗의 편에 섰던 지파도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지파가 베냐민 지파인데, 바울이 그 베냐민 지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바울 자신의 노력이라기보다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로 인하여 누리는 자부심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 할례자들과 비교할 때 부족함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업적들을 이야기 합니다. 히브리인 가운데 히브리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히브리말을 할 줄 알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는 가말리엘의 제자로 들어가 히브리사상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히브리 사상으로 무장이 된 자신은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성경에서 예수님에게 많은 지탄을 받는 인물들로 등장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던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으며, 한발 더 나아가 서기관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유전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큰 열정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였기에 그는 율법을 기준으로 한 선한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인 교회를 열심히 박해하였으며, 율법으로 흠을 찾으려 하여도 아무런 흠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업적이 그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업적이 이제는 해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바울은 그 동안 자기가 자부심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을 합니다.

내가 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금을 찾았으니, 은을 버리고 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 알고 보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날 해롭게 만들며,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모두 다 미련 없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전념하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의인이 되고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은 내가 수고하고 노력하여 이룬 업적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모두 미련 없이 버리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분 안에서 자신이 발견되려 합니다.

그리스도를 얻는 다는 것은 성령님을 나의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 안에서 자신이 발견된다는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였고, 율법에서 의를 인정받으려 하였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의는 율법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헛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인정받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의가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을 보면, 바울은 가장 고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능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민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얻고자하는 것을 포기 할 때,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믿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방파제 같은 안전한 기준을 이미 여러 번 이야기하였지만 또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낸 업적들로 인하여 우리가 부활 즉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열심히 쫓았던 바울은 오히려 이것은 해로운 것들이었으며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내가 이것을 했으니, 내가 이렇게 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해주셔야하는 차례입니다.”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너무나도 쉽게 빠지는 오류가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룬 업적이 의미가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업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관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삶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엉뚱한 것에 너무나도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을 용서하여 주세요. 하나님 앞에서 저희가 무엇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관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저희가 되겠습니다. 이 결심 변하지 않게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함께하여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