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10장 17-27절
찬송 : 425장
날짜 : 2015년 11월 22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자

서론

지난 설교에서 왕이 되는 것은 세 개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과정은 지명, 증명, 확증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명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명의 단계는 통과가 되었고, 이제 사울이 해야 하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확증을 받아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블레셋을 공격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왕이 되는 과정의 ‘지명’부분을 다시 이야기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명받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1-24)

사무엘이 미스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 앞에 모았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무엘의 첫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 구원해 주신 내용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도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모든 재난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친히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립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에 왕이 필요하니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달라는 이스라엘의 요구가 하나님 자신을 버리는 것을 받아들이십니다.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의 요구는 어쩜 당연히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에서는 왕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대통령을 국민들의 투표로 뽑지만, 그 당시 왕은 국민들이 뽑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되는 사람도 자신을 신의 대리통치자 또는 신의 아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왕은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신과 동일한 인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왕이 없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왕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그들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잘못된 요구를 들어주시는 이유는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그 길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여도 그 길을 끝까지 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길을 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직접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우린 이미 8장에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요구가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요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19절에서도 그 내용을 다시 언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세우십니다. 왕을 세우는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한 사람을 찾는 방법으로 진행이 됩니다. 지파별로 나오게 하여 한 지파를 선택하고 그 지파가운데 한 가족을 선택하고, 그 가족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뽑힌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을 찾는 방법은 우리들이 말한 제비뽑기의 방식입니다. 본문에 직접적으로 제기뽑기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선출되는 방법이 제비뽑기와 동일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제비뽑기는 신의 뜻을 알아내는 방법이었습니다. 제비뽑기는 오늘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구약성경에서도 등장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비뽑기는 여호수아서에서 아간의 이야기와, 요나서에 요나의 이야기 일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사건에서도 신의 도움으로 사람을 찾는 방법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제비뽑기가 신 즉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성경에서 사용된 제비뽑기는 범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를 찾아는 방법으로 사용이 됩니다.

성경에서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 보다는 부정적인 인물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사용이 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인물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선출된 사울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사울은 이미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사무엘에게 들었습니다. 그런 사울이 왕을 뽑는다는 곳에 있을리 없습니다. 22절을 보면 사울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을 원하였던 사람들은 새로운 왕으로 지목된 사울을 찾아서 사무엘에게 데려옵니다. 사무엘과 사울은 처음보는 것이 아니고, 이미 만남이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내용도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난 사무엘과 사울은 어색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23절을 보면 왕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로 보입니다. 또한 24절에서 사무엘의 말은 사울이 적임자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만세를 외치며 왕으로 지목이 된 사울을 반가워 합니다. 25절을 보면, 이때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합니다. 이때 사무엘이 이야기한 내용이 신명기 17장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왕의 모습인지, 사무엘상 8장에서 이미 언급이 되었던 부정적인 왕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제도를 설명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려 보낼 때, 마음에 하나님께 감동한 유력한 자들은 사울을 따릅니다.

여기에서 유력한 자들은 9장 1절에서 사울의 집안을 이야기할 때 사용 되었던 “유력한”이라는 단어와 다릅니다. 10장에서 언급된 “유력한(히: 하일)”은 군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지명이 되자 군대가 사울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처럼 사울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지만, 27절처럼 사울을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7절에 표현되어 있는 불량배(히: 브네 블리야알)은 지금의 깡패와 같은 존재들은 아닙니다. 불량배라는 단어는 이미 3장에서 엘리의 아들들에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단어를 뜻대로 번역한다면 “무가치한 사람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량배가 있다는 것은 당시 사울이 왕이 되는 것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반가워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없던 시기에 왕이 새롭게 등장하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지목된 사울은 이 불량배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더군다나 11장 13절에서 이들을 용서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왕이 되는 과정은 ‘지명-증명-확증’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메시야로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한치의 망설임이 없으셨습니다. 바로 증명의 단계를 거치며 사람들로부터 확증의 단계까지 이끌어 가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증명의 단계를 쉽게 거치지 않으셨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렵고 떨리셨지만 지명 받으시고 증명하는 그 단계를 밟아가셨습니다.

결론

사울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성격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증명의 단계로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울이 예언하였던 부분과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만듭니다. 사울은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자신을 지명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뀔거라 생각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의 지명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지명하셨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는 것과 지명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지명을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증명의 단계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확증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하나님으로 지명 받은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구약시대의 선지자 또는 왕, 예수님이 계셨던 신약시대의 사도들 그리고 바울과 같은 인물들이 지명 받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금은 목회자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물론 목회자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들은 모든 성도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우상숭배로 가득한 문화에서 살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리니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지명 받은 우리들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지명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사람들에게 확증을 받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우리 모두 진정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정받는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더 이상 한국교회에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도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부르신 이유는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인데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오물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주의 백성들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리고 증명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그로 인하여 하니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세요. 그리도 이 자리에서 그러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을 지켜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이 자녀로 이 땅에서 빛과 소금 같은 존재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도와주실 것 믿고 함께 하여주실 것도 믿고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하나님으로 지명 받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그 지명을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이들과 확증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과 이 자리에서 증명과 확증의 삶을 살아가기 다짐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가 삶에서 영원히 함께 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