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2:12-18
날짜 : 2014년 6월 15일 오후예배
요약 :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

서론

디모데의 연단

21절을 보면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은 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은 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은 죽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기에 사는 것을 선택한다고 1장 24절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살아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삶을 사는 사람은 바울 한명 밖에 없으니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사람 디모데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얻은 제자입니다. 어머니는 믿는 유대인이며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행 16:1). 그는 거짓이 없는 순순한 믿음을 가진 자였으며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딤후 1:4-5). 또한 디모데는 주의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았으며(행 16:2), 바울이 아끼고 사랑한 제자였습니다(고전 14:7).

20절을 보면, 디모데는 바울과 같이 빌립보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 바울과 함께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속히 보내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디모데가 빌립보교회에 간다는 것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며, 바울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는 일입니다.

어쩌면 바울이 직접 빌립보교회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있는 현실적인 문제로 바울이 가지 못합니다. 바울이 살아가는 이유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워진 공동체에서 좋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가지 못하는 상황이니 너무나도 속이 탈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고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는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바울을 섬겼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자신을 잘 섬겼기 때문에, 그 심복을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섬기는 이유는, 바울이라는 유능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음으로 인하여, 이제 곧 오게 될 하나님 나라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아닙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섬기는 이유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바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바로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 생각은 디모데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신뢰감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속히 디모데를 보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오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도 속히 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디모데가 먼저 가고 바울이 곧 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바울처럼 믿고 신뢰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도착한 디모데가 엉뚱한 말을 한다면, 곧 도착할 바울에게 잘못이 다 밝혀 질것입니다. 그러니 디모데는 엉뚱한 말을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바울은 디모데가 엉뚱한 말을 할지 않고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보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를 속히 보내겠다고 말하지만, 지금 당장 디모데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23절을 보면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보내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당장 디모데를 빌립보교회로 보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에바브로디도의 헌신

그런데 빌립보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빨리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처럼 신뢰하는 한 사람을 더 이야기 합니다. 이 사람도 물론 자기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울과 디모데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이 있고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빌립보교회에서 온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이며, 동역자이고 함께 군사 된 자 라고 말하며, 너희의 사신으로 내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자라고 말을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핏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의 형제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동역자이며, 복음을 위하여 함께 군사 된 자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말들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의 개념입니다.

이미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바울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닌,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인생목적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바울에게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소중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함께 사람이 소중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을 동역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동역자를 형제이며, 함께 군사 된 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울에게 동역자는 오늘날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동업자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말 할 수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동역자와 동업자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목적을 향해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동역자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고 그 일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런 동역자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동역자가 가운데 한명이 바로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에서 바울에게 보내는 무언가를 가지고 바울에게 온 사람입니다. 4장 18절을 보면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것으로 인하여 자신이 풍족하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보니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가져온 것은 빌립보교회의 선교후원금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많이 합니다. 아무튼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보내준 것으로 바울은 풍족해졌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30절을 보면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병에 걸리게 되었다는 말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병보다 근심하고 있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걱정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바울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가운데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이 병에서 낫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게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병보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결코 작은 병이 아니었습니다. 이 병으로 에바브로디도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아파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바울은 그가 죽기라도 할까 그를 바라보면서 근심에 빠질 정도로 큰 병이었습니다.

이런 에바브로디도가 병에서 낫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에바브로디도와 바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보낼 수 없는 디모데에 앞서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돌려보내겠다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디모데에 앞서 보내면서 빌립보성도들이 에바브로디도를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영접하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라고 당부합니다.

이 말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에바브로디도를 왕처럼 섬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인정하고, 그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즉 그의 신분이 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이 그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이 있는 귀중한 사람이니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명은 바울의 너무나도 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이며, 한명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사람을 섬기다 죽을 지경에까지 간 사람입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교역자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그들을 죽을 힘 다해 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는 오늘날의 교역자과 같은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들이 교역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이며,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너무나도 소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상황은 한명은 감옥에 갇혀있고, 한사람은 그 사람 옆에서 떨어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감옥에 같이 갇혀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내용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게 관심이 쏠려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들은 성령님의 은혜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이처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바울처럼 연단과 헌신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 사람은 모두 오늘날로 말하면 교역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자신이 교역자이기 때문에 대우를 받아야 하며,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역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하나 맡게 되면 거기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면 기분 나빠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많이 발생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직분을 받게 되었다면, 그 직분을 통하여 누군가로부터 섬김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먼저 우리는 21절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고 4절에서처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갖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내 주위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섬기며 돕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일만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으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