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룻기 3:1-18
찬송 : 통일찬송가 307, 337
날짜 : 2014년 8월 24일 오후예배
요약 :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자

룻의 안식처를 구해주려는 나오미(1-5)

알고 있듯이 나오미는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 할 때, 자신의 며느리인 룻과 오르바와 이별을 생각하였습니다. 나오미의 생각대로 오르바와는 이별을 하였는데, 룻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하여, 베들레헴에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오는 것을 결심하였던 이유는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상황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다시 고향인 베들레헴에 왔지만, 모압에서의 생활도 별반 다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룻이 이삭줍기를 가져오는 것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할 뿐, 이 시기가 끝나면 그들의 미래는 깜깜해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나오미는 자신을 따라온 룻의 안식처를 찾아주려고 합니다. 과부로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적인 상황이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엘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었으며, 룻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나오미의 죽은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친척이라는 말은 고엘에 의해서 나오미와 룻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도와야 하는 사람 가운데 한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처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나오미의 계획은 주도면밀하였습니다. 나오미의 계획을 보면, 룻이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잘 차려입고 타작마당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하는 것은 보아스가 저녁을 먹고 잠자러 가기 전까지 보아스의 눈에 띄면 안되며, 미리 보아스가 잠잘 곳이 어딘지 까지 알아두어야 합니다. 이제 보아스가 저녁을 먹고 잠을 자러 가면, 룻이 보아스의 발치에 있는 이불을 들추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 함께 눕는 것 여기까지가 나오미의 계획입니다. 그러면 뒷일은 이제 보아스가 설명 해줄 거라는 것이지요.

룻은 나오미의 계획을 듣고, 그대로 하겠다 말을 하며 룻의 행동이 시작이 됩니다.

나오미의 계획대로 하는 룻(6-13)

보아스는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잠 잘 곳으로 이동하여 누웠습니다. 그때 보아스는 깜짝 놀랬습니다. 자신의 발치에 한 여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누구냐고 묻자 자신은 어르신의 여종 룻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이니 기업을 무를 자의 의무를 해달라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룻을 이상한 여자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룻을 축복하며,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룻이 현명한 여인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룻이 현명한 여자라고 하는 말은 문자 그대로 지식이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라, 2장 12절에서 보아스가 한 말처럼 모압에서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보호아래 들어 온 것에 대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룻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1순위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라,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좋은 명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곳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있다고 하여서, 법과 절차와 같은 것들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보아스는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 1순위에 해당하는 사람을 먼저 만나겠다고 말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하겠다고 하면, 자신이 룻과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그 사람을 만나보고, 그 사람이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면, 자신이 그 다음 순위의 사람이니, 꼭 그 의무를 다하겠다고 룻에게 약속을 합니다.

보아스의 계획대로 하는 룻(14-15)

그리곤 보아스는 나오미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제 룻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합니다. 룻이 해야 하는 일은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보아스가 룻에게 부어준 보리 여섯 되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룻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 전에 타작마당을 나가야 하는데, 그 이유는 룻이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왔다가 아침에 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룻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룻의 기업 무를 자의 1순위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성읍 안으로 들어갑니다.

집에 돌아온 룻(16-17)

집에 돌아온 룻은 보리 여섯 되를 나오미에게 보여주며, 보아스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룻에게 이제 보아스가 이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이니,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잠잠히 기다리라 말합니다.

마무리

룻기 3장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시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단지 등장하는 사람들의 계획과 그 계획을 따르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오미의 계획이 너무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범죄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시각으로 룻기를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룻기는 그 당시의 문화와 시대적 상황 가운데 쓰여졌기 때문에 그 당시의 문화와 시대적 상황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용되지 않는 제도인 고엘 제도가 당시에는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계획이 우리의 시각에서는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오미는 당시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는 고엘 제도를 활용하여 룻의 안식처를 만들어 주려 합니다. 룻기 3장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 시대의 상황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내용을 이해를 하고, 지금 내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나도 룻처럼 남편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행동해서도 안되지요.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자는 그 핵심을 찾고, 그 핵심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요.

룻기 3장은, 하나님의 역사에는 인간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니, 나는 가만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의 삶이 열심히 쫓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부유했지만 모압에 갔다가 빈털터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처를 만들어 주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룻은 2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받기 위하여 온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계획은 룻을 보하시는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바라봐야하는 대상은 나오미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는 상황 가운데에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나오미의 그 계획은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에 나오미의 계획대로 룻이 행동하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과 행동은 나오미와 룻의 가정에 무관심해도 문제가 없어 보이는 보아스를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실제로 보아스는 고엘에서 자신이 1순위가 아니라 2순위의 사람이기에 룻의 기업 무를 자의 의무에 대해서 큰 관심을 당장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계획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의무에 대해서 주도권을 갖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반영이 된 나오미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보아스의 적극적인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룻의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이지요.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의 행동으로 다윗 가문이 역사에 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사람의 적극적인 모습은 하나님의 계획을 더욱더 역동적으로 실현되게 합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사람들의 소극적인 모습은 하나님의 계획을 매우 지루하고 심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계획이나 구원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의 삶에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내 주위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적극적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그 시대에 가장 큰 저주와 불명예 그리고 너무나도 큰 고통이 따르는 십자가 형벌이 있었습니다. 이 형벌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부담과 걱정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의 시기를 늦추려 하거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시간에 맞게 적극적인 모습으로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우리들이 죄에서 해방이 되었으며, 인류가 시작되면서 뒤틀어져버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도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우리가 빌립보서를 보았습니다. 바울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하였고 그 결과 자신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적극적인 모습에 많은 사람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다른 사명자들이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상황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도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있는 결과를 만들었지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의 삶에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행동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더 역동적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저를 하나님의 품으로 불러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저 자신도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바지 하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미 저를 잘 알고 계시듯이 아직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저를 이끌어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주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