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595장
날짜 : 2015년 7월 12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올바른 모습으로 살자
서론
우리는 저와의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자신들을 다스려줄 왕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실질적인 왕이라 생각하였을 수도 있는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를 듣고 큰 실망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사무엘을 하나님은 위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요구에 실망하셔야 할 분은 사무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보살피고 있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큰 실망을 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은 사무엘을 위로하시는 한편 이스라엘의 어이없는 요구를 받아들이시고, 그들에게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시고,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오늘 이 청년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1-14)
베냐민 지파의 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사울이라는 준수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본문 앞의 이야기에서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모습들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악마의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부정적인 모습이었으며, 사무엘의 아들들 또한 긍정적인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베냐민 지파 가운데 기스라는 사람이 있고, 기스의 아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의 뜻은 “구하여 얻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이 뜻과 이스라엘이 구한 왕의 이야기를 연결해보면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사울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년이라는 말은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소년의 의미와 다릅니다. 성인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의 소년이라는 말은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에도 동원될 수 있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목소리도 낼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런 사울은 이스라엘의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준수하였으며, 키가 모든 백성들보다 어깨 위는 더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생기고 키도 큰 인물이었기에 요즘 사람으로 말하면 ‘정우성’, ‘김수현’ 같은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이처럼 사울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왕이 사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기스는 암나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사울에게 집안의 종 가운데 한명을 데리고 나가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말합니다. 준수하고 키가 큰 사울은 아버지의 말도 잘 듣는 청년입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암나귀를 찾으러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정작 찾아야 하는 암나귀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사울은 아버지가 자신으로 인해서 걱정을 하실 것 같아, 암나귀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합니다. 그때 함께 온 종이 한마디의 제안을 합니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성에 하나님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가보자는 제안입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무엘입니다. 사울과 함께하고 있는 종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를 찾아가면 사무엘이 자신들의 길을 알려줄 것이라는 말도 합니다.
종이 암나귀를 찾는 것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반대로, 사울은 사무엘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소극적입니다. 사울은 자신들은 가진 것이 없으니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보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종은 자신이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그것을 주면 된다며 사울을 찾아가자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그때서야 사무엘에 가는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울과 종은 사무엘을 찾으러 가는 길에 물 길러 나온 소녀들을 만나게 됩니다. 소녀들과의 이야기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녀들이 사울과의 대화를 길게 이어가고 있는 것은 사울의 외모 때문입니다. 사울의 잘생긴 외모가 소녀들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길을 가다가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는 것이 우리들은 익숙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우물가에 물 길러 나온 여인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또한 우물가에 양떼에게 물을 먹이러 온 라헬은 야곱의 아내가 되었으며, 우물가에 양떼에게 물을 먹이러 온 십보라는 모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면, 사울이 우물가에서 소녀들을 만났으며 그 소녀들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이라면, 사울도 이 소녀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 만나는 것이 목적이 됩니다. 그렇기에 사울과 사무엘의 관계는 어느 혼자서만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둘이 함께 해야만 하는 부부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신 이후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가 없이는 똑바른 왕이 될 수 없고, 선지자도 왕 없이 백성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왕과 선지자의 부부와 같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물가에서 사울은 소녀들과의 대화로 산당에 올라가는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사무엘이 산당에 올라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왕들의 잘못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산당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산당에 갔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산당이라는 것 자체가 죄를 만들거나 산당에서 제사 드리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산당이라는 것은 높은 곳을 이야기합니다. 고대근동시대를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신이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것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장면입니다. 이처럼 신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은 높은 곳에 가야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산당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당에 제사 드리러 올라가는 사무엘과 사울은 만나게 되고, 이후의 이야기에서 사울과 사무엘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서로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본문은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만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해 중요한 사건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이야기에서도 만남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물론 예수님 혼자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에게 제자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뜻을 정하셨기에 이제는 제자들 없이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결론
그런 의미에서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은 하나님의 통치라는 관점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사울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너무나도 좋은 인상을 주는 인물로 등장을 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은 왕권을 향한 욕심에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삶을 마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만남이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중요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배신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을 넘겨주는 역할을 하였던 유다,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베드로, 그 이외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각자 살길을 찾아 숨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보았던 가인과 에서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끝까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선택받지 못했다는 말은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단지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택을 받은 사람과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 모두가 자기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욱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선택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내용이 아니라, 단지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선택받은 분들이라면 그 선택받은 것을 은혜로 생각하시고 하나님 앞에 성실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선택받지 못한 분들은 기회는 계속 주어지는 것이니 하나님 앞에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축언합니다.
기도
하나님 저의 모습, 저의 상황, 이 모든 것을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지 빨리 알고, 그것에 성실하고,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도와주세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원하며, 다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우릴 받아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