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2-18
서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고, 말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 조차도 한동안 이 대답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이 고작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 전부라면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말구유보다 못한 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다. 그 대답은 2장 6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라
바울은 앞서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받아 살면서, 서로가 하나가 되라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결코 자기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야기하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큰 개념의 말입니다. 너무나도 큰 개념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명확한 개념을 잡기보다는 두루뭉술한 개념을 잡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빌립보성도들에게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자신을 낮추고 한마음 한뜻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이야기 한 내용인 것이지요.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울이 이미 앞서 이야기한 내용이 중요한 것이니 좀더 확실히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12절을 보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이야기에 항상 순종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순종하였던 모습을 기억하며,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있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 즉 자신을 낮추고 한마음 한뜻으로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권브이 보셨지요? 그 만화를 보면 훈이라는 캐릭터가 태권브이에 들어가 훈이가 이단옆차기를 하면 태권브이도 이단옆아기를 하고 손을 움직이면 태권브이도 손을 움직이는 그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이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태권브이처럼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움직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원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움직이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비록 내안에 하나님께서 계신다 할지라도 나 자신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빌립보교회에 교만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아닌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며 섬기는 모습으로 옆에 있는 성도를 대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으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이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불평과 분쟁이 없이 하라
또한 빌립보교회에서는 시비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을 1장에서 보았습니다. 서로 자신이 맞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이야기를 하니 시비가 붙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흠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부패한 세대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하여서는 먼저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시비를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옳고 그름은 가려야 합니다. 1장 10절에서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1장 10절을 보면 그것이 선한 것인지를 구분하기 위함이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자신을 자랑하고자하는 것에서 시비가 아닙니다.
이미 2장 1절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받은 은혜가 더 크다 또는 옳다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시비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 이미 선한 것으로 판정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순위를 정하고, 어떤 것이 더 맞고 덜 맞고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무의미한 경쟁을 하지말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살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는 세상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2장 5절에서 11절까지의 내용에서 낮은 곳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셨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의미 없는 경쟁이나, 불평과 불만으로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한마음 한뜻으로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랑하게 하라
세상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모습이 될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면서 바울은 부탁 비슷한 말을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붙들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자랑할 수 있도록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1장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로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자랑할 수 있도록 살아달라는 부탁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자랑하는 것은 바울이 헛되게 가르치지도 않았고, 헛된 수고를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울의 기쁨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희생제물과 봉사 위에 바울 자신을 드린다 하여도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죽어 희생제물이 되더라도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결론
그런데 바울이 아무리 기뻐한다 할지라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들은 아닙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한다는 것은 바울 자신은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실 때 자신은 죽었고, 그 안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결국 바울의 기쁨인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에게 먼저 유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가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예배에 나오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거짓 방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과연 선한 것인지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선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그러한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 안에 이미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행위를 하였든 하지 않았든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갖고 계신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에 우리가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에 잘 보이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내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함이고, 그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기쁨이 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초점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향하고 있다면 그 초점을 반드시 수정하셔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잘되고, 내가 건강하고, 누군가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마음인지, 아니면 진정 하나님 한분만을 위한 마음인지 내가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혹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모두 다 내려놓고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만을 향한 생활을 하겠다고 결단하며 결심하는 기도로, 하나님 만을 위한 이유라면 이 믿음이 변하지 않고 내 평생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