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8:18-9:2
찬송 : 301장
날짜 : 2015년 5월 24일 주일예배
요약 : 내 욕심에 기반 한 헛된 시간을 보내지 말자.

서론

우리는 벌써 많은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각자 나이를 생각하고 적지 않은 숫자를 곱하고 더하면 내가 살아온 시간이 나옵니다. 하루 하루 짧게 생각하였더라도 인생을 숫자로 바꾸고 나면 매우 큰 시간이라는 생각과 ‘이 많은 시간에 나는 뭘 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준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18-20)

11절부터 17절까지 보면 왕의 부정적인 모습을 강조하며 사무엘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왕의 부정적인 모습은 우리가 오늘 본문의 첫 구절로 읽었던 18절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사무엘이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왕의 부정적인 모습을 이제 삶에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무엘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시기는 그전에 누리지 못하였던 평화를 누리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평화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라는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은 통치를 받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리는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평가 받은 시간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주 무대가 되는 고대근동의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힘없고 아주 작은 하나의 민족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주위에 있는 민족이나 나라들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받으며 시달렸습니다. 그만큼 주위에서 만만한 민족으로 평가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금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그들의 뛰어난 전투력이나 뛰어난 민족성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무엘의 말은 왕이라는 제도가 매우 큰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딱 짤라 말하며, 여전히 그들의 주장인 왕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이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방금 백성들이 한 말은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이야기하면서 하였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백성들이 한 말은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올 때 미리 준비하여 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실질적으로 왕을 요구하는 이유가 그들의 대답에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왕이 자신들을 보살펴 주기 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왕이 생기면 백성들은 왕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왕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왕은 자신들의 자유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4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자유를 위하여 전쟁에서 힘내 싸우자고 말하였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왕을 허락하신 하나님(21-22)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사무엘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다시 하나님에게 기도를 합니다. 사무엘의 기도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어떤 내용으로 하나님께 나갔는지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느낀 감정은 6절에서 기도하였던 내용과 비슷하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다시 이스라엘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배신감을 느끼고 하나님께 나갔더니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이스라엘에게 왕의 제도를 가르쳤습니다. 사무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사무엘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사인 사무엘의 통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통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잘 알면서 너희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라는 생각과 자신이 한 평생 헌신하며 보살폈던 모습들을 생각하며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다르게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요구는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제도라는 것은 그 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제도입니다. 기존에 민족 또는 족장의 모습에서 할 수 없었던 이들을 왕은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왕은 수로를 만들어 물이 있는 곳에서 물이 없는 곳까지 길을 만들어 물을 제공하였습니다. 이처럼 왕이라는 제도는 앞선 제도입니다. 이것을 요즘시대에서 아주 간단하게 비유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2G폰을 쓰고 있는데, 2G폰 못쓰겠으니 LTE폰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요구는 합당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가 아무리 합당해 보인다하여도 가장 핵심인 하나님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며 살고 있고, 평화로운 시기를 맞으며 살고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배신감은 사무엘이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느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요구는 분명 하나님께 비수로 꽂혔습니다.

이런 하나님은 22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요구는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받아들이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가라 말합니다.

8장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9장은 키도 크고 잘생긴 사울이라는 한명의 청년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수제자의 위치에 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던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을 짧은 시간에 3번이나 부인하며 자신의 유익을 챙겼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느꼈던 감정과 동일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에게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모든 상황을 종료하시고 베드로를 심하게 문책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행동을 그대로 용인하셨습니다.

결론

왕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고 거스를 수 없는 변화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요구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그들을 돕고 있으며 실질적인 왕인 하나님을 서운하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다시 한번 2G폰을 이야기 하자면 모두가 LTE를 쓰고 있는데 나만 2G폰을 쓰는 학생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LTE로 바꾸는 것이 많은 이유에서 좋습니다. 그렇다면 요금을 내주는 부모님께 무조건 LTE로 바꿔 달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현명한 방법으로 접근하여야 합니다. 부모님도 시대의 흐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접근방법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하셨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시는 시점에 사울이라는 잘생기고 키가 큰 청년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키가 크고 잘생겼다는 것은 왕에게 1차적으로 요구되는 이상적인 모습니다. 더군다나 사울이라는 이름의 뜻이 “요구된 자”라는 뜻이라는 것은 사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이 아니라 전형적으로 사람들이 원한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이것이 잘못된 요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요구를 받아주셨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이런 인간의 특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들을 끌고가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가게 하시고 그들이 몸으로 직접 느끼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욕심을 또는 우리들의 생각을 끊임없이 주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억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욕심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욕심과 내 생각으로 하루 하루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헛된 시간으로 허비하는 성도들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계속과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중심적인 욕심을 붙잡고 살지 않게 하여 주세요.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살기를 다짐합니다. 성령님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세상의 많은 장소와 시간에서 헛된 세월을 보내지 않기 원하는 성도들과 이 자리에서 새롭게 다짐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가 삶에서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