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304장
날짜 : 2015년 5월 17일 주일예배
요약 :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자
서론
사무엘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이스라엘은 평화로운 시대를 만끽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사무엘도 많은 나이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두 아들을 새로운 사사로 세웁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의 모습은 사무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마치 엘리의 아들들처럼 자신들의 욕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사가 된 사무엘의 아들들(1-3)
사사가 된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사무엘은 엘리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무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사무엘의 말이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큰 영향력이 있다는 말은 3장 19절에서 언급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이렇게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시간은 이전의 상황과 다르게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사무엘도 늙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웁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시작이 됩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은 사무엘과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의 두 아들을 보며, 엘리의 두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하였습니다.
라마로 모인 이스라엘 장로들(4-5)
사무엘의 아들들이 판결하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 상황을 쉽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힘없고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창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사의 판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약자들의 간절한 기대와 다르게 돈에 의하여 판결이 내려집니다. 이런 시대라면 돈 없는 사람들은 계속 힘들어지고, 돈 있는 사람은 자신들의 배를 계속 불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이스라엘의 어른들이며 영향력이 있는 장로들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장로들이 사무엘이 살고 있는 라마로 찾아왔습니다. 장로들은 사무엘이 늙었고,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한가지의 제안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스라엘에도 왕이 필요하니 왕을 세워달라는 제안입니다. 그들의 제안을 보면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온 것은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에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이미 이스라엘 주위 나라에는 왕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왕이 이집트의 “바로”입니다.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바로’는 “파라오”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정리하고 나온 시간을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0년 이상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왜 왕을 요구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장로들이 말하는 것처럼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왕은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의 군대는 직업군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 직업군인들이 전쟁에 참여하여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으니 직업군인도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스라엘은 전쟁이 농사 짓던 일반인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전문적인 전쟁교육을 받은 직업군인과 농사 짓다 전쟁에 투입된 일반인의 전투력은 차이가 납니다.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왕으로 인한 또 다른 장점은, 왕의 존재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왕의 개념과 그 당시 왕의 개념은 다릅니다. 왕은 신의 형상 또는 아들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는 그들의 삶과 너무나도 밀접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을 잘 섬기면 그 신이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신의 형상 또는 신의 아들이 자신들과 가까이에 있으니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 왕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는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의 장점들을 끊임없이 찾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말에 기뻐하지 않은 사무엘(6-11)
사무엘은 장로들의 제안을 좋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사무엘의 한 평생에 걸친 헌신으로, 이스라엘은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사무엘 자신과 그가 선택한 그들의 아들이 아닌 왕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무엘의 기도 내용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사무엘의 마음이 방금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7절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마음과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라 말씀하셨을까요? 답은 이미 언급이 되었습니다. 왕은 신의 형상 또는 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시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왕이 생긴다는 것은 신의 형상이나 신의 아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을 다르시는 존재가 사무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무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이 요구하는,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왕 즉 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의 마지막을 부분을 보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런 요구가 처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이 아니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바로 앞장인 7장에서처럼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잊고 다른 신을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장로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10절부터 왕의 제도에 대하여 부정적인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날로 커져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호산나(기쁨의 환호 / 뜻_구원을 베푸소서)를 외치며 환대하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계획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며칠 후에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환호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라졌습니다. 그 사라진 자리에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자들로 채워졌습니다.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을 때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였던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생각에 맞지 않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결론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끔 감사한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계획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계획대로 실행을 합니다. 그랬더니 나의 계획대로 또는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때, 우리는 “하나님 감사 합니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물론 이마저도 감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방금 보았던 것처럼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철저히 내 중심적인 생각에 중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영생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계획하고 실행하여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또한 내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해결해 주실 것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스라엘 장로들처럼 우리들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야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나의 계획과 나의 생각이 중심이 되는 것은 나의 욕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전적으로 나의 욕심입니다. 나의 욕심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입으로 하나님을 더욱 믿고 신뢰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생각과 우리들의 관점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이 듭니다. 하나님 이런 생각조차도 내려놓게 도와주세요.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세요. 성령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나의 욕심에 기반을 두고 감사하지 않게 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처럼 살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