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430장
날짜 : 2015년 3월 22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더욱 강건하게 하자
서론
우리가 홈쇼핑이나 광고를 보다보면 옷이나 화장품 같은 종류의 상품들이 너무나도 좋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계획에 없었던 물건을 사게 되고, 사용하다보니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산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민족도 가나안 땅에 살게 되면서 하나님보다 더 좋아 보이는 신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일부 홈쇼핑이나 광고의 물건처럼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호와를 찾는 이스라엘(2-4)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고,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하였던 블레셋의 간섭과 괴롭힘은 여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생활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20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 온 곳은 사무엘의 집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이스라엘에게 3가지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하는 말인 “만약에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면”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럴 마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십계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것을 금지하고 계십니다.
단순히 지금 어렵고 힘이든 상황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다 포기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지만 하나님의 도움심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라고 제시합니다.
사무엘의 두 번째 조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고 있는 이방신과 아스다롯을 제거하라입니다. 이 조건은 첫 번째 조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강한 민족이고, 이러한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런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민망할 정도로 자주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런 그들의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시간을 살면서 도움을 받았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제 힘이 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고나니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지마라고 말씀하셨던 우상 섬기는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지적하고 있는 우상은 대표적으로 바알과 아스다롯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바알과 아스다롯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민족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바알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바람과 비에 관련이 있다고 믿는 신이며, 아스다롯은 전쟁과 다산에 관련이 있다고 믿는 여신입니다. 물론 바알도 비, 바람과 관련이 있는 신이기에 천둥과 같은 것을 동원하여 전쟁과 관련이 있는 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신들을 섬기는 것을 사무엘이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아니라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알수 있습니다. 이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깁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신도 성별이 있고, 신이 인간과 같이 혼자 있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성 신과 여성 신을 함께 섬겼는데,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은 마치 한 쌍의 부부처럼 생각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상황입니다.
그뿐 아니라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을 섬겼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고자 한다면, 그 모든 신들을 제거하고 홀로 위대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세 번째 조건은, 마음을 다른 곳에 쏟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 한분에게만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사무엘에 제시하고 있는 조건들은 하나님 한분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무엘이 하나의 조건을 3번이나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이방신들 섬기는데 적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로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섬긴다면 지금 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블레셋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무엘의 말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사무엘의 말대로 바알신과 아스다롯 등 이방신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됩니다.
사사가 된 사무엘(5-11)
이렇게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게 된 이스라엘은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모든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말대로 미스바에 모이자, 사무엘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는 않습니다. 기도에 앞서 이스라엘의 죄를 먼저 회개하도록 합니다.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그곳에서 금식을 하며 “여호와여 우리가 범죄 하였습니다”라는 죄의 고백 즉, 회개를 하도록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금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금식에 대해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식은 우리들의 기도제목이 있으니 그 기도제목을 들어달라는 개인적이고 개인욕심으로 시작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 금식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과 함께 등장하며, 하나님 앞에 어떠한 결단을 할 때 등장합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회개와 결단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의 금식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었고,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금식을 하시고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금식은 남편감을 달라는 기도나,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 내 자식 잘 되게 해달라는 식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제목의 응답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곧 고난주간이 다가옵니다. 이 기간에 금식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금식을 하기 전에 내가 금식을 왜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먼저 생각하세요. 단순히 매년 고난주간이 돌아오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아무런 의미 없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묵상하고 내 삶에서 죄의 고백, 하나님을 향한 결심을 세우고 금식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회개와 함께 미스바에서 새로운 사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엘리가 사사로 40년을 살다가 죽은 이후 20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 동일한 지역에서 새로운 사사 사무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사기를 보면 사사가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부분 부분을 다스립니다. 엘리의 뒤를 이은 새로운 사사의 등장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이 블레셋의 군주들에게 들리게 됩니다. 그들은 모여 있는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사사인 사무엘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해주십시오.”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다른 사사들에게 했던 기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탁을 들은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올려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동안 블레셋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달려왔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사무엘의 모습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적군의 군대가 몰려 올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군대를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제사를 드리며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무엘의 행동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부르짖던 그 날 여호와께서 블레셋 군대를 큰 천둥소리로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달려온 블레셋 군대는 전쟁에 준비하지 못하였던 이스라엘에게 패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몰려오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만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미스바에서 나와 벳갈 아래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죽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두려움과 고통을 주는 대상에서 이제는, 반대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회복되는 이스라엘(12-17)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 하나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 돌에,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말을 세기고, 그곳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벤에셀은 이스라엘이 4장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진을 쳤던 곳입니다. 이곳에 승리를 기념하는 돌을 세웠다는 것은 블레셋에게 빼앗긴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사로 세움을 받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을 막으셨습니다. 여호와의 능력을 나타내는 여호와의 손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을 지키는 방패와 같은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창과 같은 역할도 같이 하며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에그론에서 가드까지의 영토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4절에서 “아모리 사람과 사이가 평화로웠다”는 표현은 힘이 약하여 가나안 민족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힘없는 민족이라서 당해야 하는 많은 굴욕들을 다 제거하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사사로 임명이 된 이후 평생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살게 됩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집이 있는 라마에 살면서 해마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사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또한 여호와를 위하여 라마에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사탄의 시험은 3가지가 있는데, 이 모든 시험을 예수님께서는 통과를 하십니다. 처음부터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지만 승리를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믿음이었습니다. 사탄은 인간적인 고통인 배 고품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의도로 해석하며 예수님을 시험하였고, 자신을 섬기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유혹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유혹에 넘어가 사탄은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전혀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결론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믿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이러한 고백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너무나 익숙해지고, 이러한 말을 해야 한다는 강요로 인해서 소위 말하는 ‘영혼 없는 대답’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우리들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세상에 물들어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돈을 찾아 자신의 인생을 모두 투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도 돈을 찾아 가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학창시절 또는 함께하던 지난 시절에 나보다 능력이 떨어지던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으로 나보다 잘 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 속상하고 억울한 느낌이 들며,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맛있는 것을 못 먹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을 쫓아가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믿음으로 우리들의 결론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죄로 물들어 죄인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가 덮어졌고, 그로 인하여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더 많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지역의 다른 신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에 찾아온 곳은 하나님 앞이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좋아 보여서 그것을 찾는다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보다 더 좋은 분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우리가 처해서 살고 있는 상황이 우리들에게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면 이 모든 시간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되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을 통하여서 믿음을 더욱 키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려움이 되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믿음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굳게 세워가며,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감사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지금 이 예배가 마쳐지고 나서도 바로 세상으로 돌아가 우리들에게 맡겨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은 세상과 떨어져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우리들의 생각이 자칫 세상의 것들로 물들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에 물들어 있는 세상의 것들을 빼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더 굳세게 세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세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누리는 행복을 느끼고 영원히 경험하며 살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