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11
서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고, 말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 조차도 한동안 이 대답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이 고작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 전부라면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말구유보다 못한 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다. 그 대답은 2장 6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1장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까지 한분이 찾아서 읽어주시겠습니까?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으며, 창조된 것 중에 그분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세상의 모든 것이 말씀이신 분으로 인하여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시라는 분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을 보면 바로 하나님이신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본문에서 나오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모습을 하였던 어떤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모든 권위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포기하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나타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종인데, 쉽게 말해서 주인이 종들을 위하여 종의 모습으로 종이 사는 세계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종의 세계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십니다. 그 순종은 죽음에 까지 이르는 순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까지 이르는 순종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듣다보니 죽음에 이르는 순종이 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순종이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제가 2012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때 주례를 해주셨던 목사님께서 주례사를 해주셨는데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인트는 사랑, 섬김, 순종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주례사를 듣고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을 하였습니다. 서약 안했으면 지금 이렇게 있지 못하겠지요.
근데 저의 모습을 보면 사랑, 섬김, 순종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안되고 있는 저의 모습을 하루에도 수 십번은 바라보게 됩니다. 육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함께 해달라는 말을 했을 때,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컴퓨터 앞에 있고, 아내는 빨래며, 청소며, 설거지며,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가는 모습이 하루에도 많이 반복이 됩니다.
그러다 몇 번 더 도와달라고 하면, “알겠다고 도와줄꺼라고...”라고 말하면서 저는 화까지 냅니다. 그러다 잠잘 시간이 되어서 잠을 잡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의 일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어렵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과 비교가 물론 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낮추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나무에 매달려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시는 마음이 확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았다고 까지 평가 받을 만큼, 낮아지시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심으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모두 예수 이름 앞에 무릎을 끓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을 하시니 결국 모든 사람이 그분을 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주님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자기 자신들과 별반 다름이 없는 종의 모습이지만 이제 그분을 보면서 주님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빌립보 성도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1-2절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격려를 받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은 사람, 성령과 교제를 통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고 인애와 같은 경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 할지라도, 한 생각을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며 자기 자신이 더 큰 인물임을 자랑하는 모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의 주장만 이야기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만이 하나님을 안다는 교만과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힘으로 인하여 한공동체에 있지만 하나가 되지 못하는 모습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사랑으로 뜻을 합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각자가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들이 보기에는 달라보이지만 결국엔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로 모이지 않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지요.
한 가지의 생각을 하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과 서로를 돌아 볼 줄 아는 여유도 갖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만 자기 자신의 자랑에만 너무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면서 한가지의 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슴에 품으라고 말합니다.
결론
우리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고,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판단으로 우리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때로는 고집과 아집으로 표현 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조금만 낮추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 할 수 있는 힘과 도움을 허락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