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통일찬송가 351, 359
날짜 : 2014년 8월 10일 오후예배
요약 : 내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보아스를 우연히(?) 만난 룻(1-7)
2장은 나오미에게 자기 남편의 친척이 있다는 설명으로 시작을 합니다.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으로 지목이 되는 사람은 보아스입니다. 이 보아스는 평판이 좋게 소문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보아스를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2장은 나오미 가족과 보아스와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게 만들어 줍니다.
베들레헴에 빈털터리로 돌아온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겠다는 룻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나오미의 허락을 받게 된 룻은 자신에게 은혜 베푸는 자를 따르며 이삭을 주웠습니다. 이 은혜를 베푸는 자가 밭주인이 보아스였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우연한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친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는 몰라도, 보아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였습니다. 룻은 베들레헴사람이 아닌 모압의 여자이며, 베들레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룻이 보아스를 보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연한 일이 또 한번 발생 합니다. 그것은 4절입니다. 밭주인인 보아스가 밭에 방문을 한 것입니다. 추수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보아스가 자신의 밭에 나오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룻이 나온 밭에 처음 온 듯한 대화가 오갑니다. 보아스가 밭에 와서 추수하는 자들에게 하는 첫 번째 말이 “여호와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네”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한다는 개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은혜입니다.
뭔가 불안해하고 있었던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여호수아에게 힘을 주실 때 하셨던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이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 1장에서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이 ‘임마누엘’의 뜻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이렇게 의미가 큰 말로 보아스는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합니다. 추수하는 사람들이 보아스에 의해서 고용이 되었거나 종들이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보아스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과 그의 명성이 괜히 높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보아스에게 한명의 여인이 눈이 띄게 됩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자를 감독하는 종에게 그 여인이 어느 집 사람이냐고 물어 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한 사람이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이 누군지 알고 싶었기에 어느 집 사람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그 여인이 모압에서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이라는 설명을 듣게 됩니다. 또한 그 여인은 아침부터 와서 집에서 잠시 쉰 것 외에는 지금까지 계속 이삭을 줍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보아스는 룻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룻에 대한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아스의 밭에서 두 번의 우연으로 룻과 보아스는 첫 대면을 하게 됩니다.
보아스의 호의(8-16)
룻이 보아스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지만, 11절을 보면 보아스는 룻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어 룻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오미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여기서 떠나지도 말며, 내 여종들을 바싹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우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들에게는 룻을 건드리지 말 것과, 룻이 목이 마르면 종들이 길러온 물을 주라는 지시를 합니다.
보아스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룻은 자신이 이방여인인데, 이런 은혜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이미 자신이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룻에게 풍성하게 보상해 주기를 바란다는 축복을 합니다. 보아스가 이런 축복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룻에게 풍성하게 보상을 해주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아스 자신입니다.
보아스는, 식사 할 때 룻에게 가까이 와서 빵에 초를 찍어먹게 하며, 볶은 곡식을 건네는 등의 지속적인 호의를 베풉니다. 이런 보아스의 호의로 인하여 룻은 배불리 먹고 음식을 남길 수까지 있었습니다.
이렇게 식사가 마쳐지고고 보아스의 호의는 계속 됩니다. 보아스는 종들에게 “그 여자가 곡식 단 사이에서도 주울 수 있게 하며 책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 여자를 위하여 곡식 다발 중에서 일부러 뽑아 두어 그 여자가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런 호의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보아스의 호의를 받는 사람은 단 한사람 룻입니다.
집에 돌아온 룻(17-23)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나간 이삭줍기에서,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된 룻은 보아스의 호의로 인하여 보리 한 에바 정도를 가져오게 됩니다. 한 에바는 22리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룻이 하루 동안 보아스의 밭에서 주워온 보리가, 우리가 요즘 사먹는 20키로 짜리 한 포대보다 더 많은 양을 줍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의 양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닙니다. 전적으로 보아스의 호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많은 보리를 줍게 된 룻은 나오미가 있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본인이 주운 보리를 나오미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배불리 먹고 남긴 음식을 나오미에게 건넵니다.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보리를 줍는 것도 놀랍고, 음식까지 가져왔으니 나오미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서 룻에게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주워 올 수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런 호의를 베푼 사람에 복 받기를 원한다는 축복을 합니다.
룻은 이 모든 일이 보아스라는 사람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보아스를 여호와께로부터 복 받기를 원한다는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룻에게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보아스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며, 유업을 물어줄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라고 말을 합니다.
유업을 물러 줄 사람이라는 것은 고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엘은 1장에서 잠깐 언급이 되었습니다. 당시 씨족 또는 부족사회를 유지해 가는데 중요한 하나의 제도입니다. 1장에서는 룻과 오르바에게 나오미는 자신의 아들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2장에서는 하나의 가족 단위의 개념이 아닌, 친척까지 범위가 확대됩니다. 이러한 고엘제도로 인하여 보아스는 나오미의 가정에 기업을 무를 자가 여러 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명이라는 것을 룻에게 알립니다.
그러면서 나오미는 룻이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룻이 보아스의 여종들과 함께 다니고, 다른 밭에서 사람들이 룻을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대로 행동을 하며,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스의 여종들과 바짝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우며 생활하였습니다.
마무리
룻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분명히 포함이 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룻기에서 하나님의 활동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단지 여호와라는 단어들만이 사용이 되는데, 그것도 사람들에 의해서 언급이 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룻은 이삭줍기를 하러 간다고 하였지만, 어느 특정한 밭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갔는데 그곳이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타작하는 곳에 나왔는데, 우연히 룻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룻과 보아스는 우연하게 첫 만남을 갖게 됩니다.
모두가 인간들의 우연한 행동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정면에 나서지 않으시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지만, 룻과 보아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등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증명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말과 여호와께서 복 주시기 원한다는 말 그리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바란다는 말들이 그것입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자신들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안계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룻기의 등장인물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묻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등장인물들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묻지 않지만, 자신들의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일을 진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가 사사 시대이며, 각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시대였지만, 그렇기에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각자 옳은 대로 행동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딱히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지 의문을 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며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입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이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대로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지금 내 옆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나와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늘 동행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룻의 어려운 상황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을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안전하게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가 하늘나라를 소망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살다보면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 다가올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거나, 나를 떠나셨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해주세요.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더욱더 생각나게 해주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언제나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