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543장
날짜 : 2015년 3월 8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살자.
서론
우리들은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갑니다. 지난 한주도 힘들게 살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느끼는 나의 삶은 항상 힘들고 어렵습니다. 이렇게 내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부담이 되고 그것이 나의 인생에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가운데 하나님이 이 일은 하지 못하시지 못하나보다 또는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를 향한 사랑을 알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잘려진 다곤신상(1-5)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것같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 때문에 블레셋에서도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전쟁터였던 에벤에셀에서 블레셋의 영토인 아스돗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리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이 하는 것과 동일하게 패전국의 신상을 자신들의 신상 곁에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신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신상 대신 언약궤를 그들의 신당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난 아침 블레셋의 신당을 지키는 사람들이 신당에 들어와보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이 섬기고 있는 신인 다곤의 신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곤의 얼굴과 손은 잘려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곳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신전입니다. 그 말은 그들이 신성하게 생각하고 철저한 관리를 하는 곳입니다. 그 누구도 이곳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신상을 망가트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신상이 잘려져 있으며 언약궤 앞에 엎드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 상황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을 망가트렸으니 어느 특정한 나라의 사람이 이런 일을 하였다면 그 나라와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빌미가 되는 것이며, 블레셋 사람이 이 일을 하였다면, 그의 가족을 모두 죽일 수도 있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사이에 어떤 사람의 출입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블레셋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문지방을 밟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 기록된 오늘날까지라는 말은 지금을 살고 있는 2015년까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서가 기록되던 당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싸우시는 여호와(6-12)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신상의 목과 손이 잘리고 언약궤 앞에 엎드려져 있는 상황이 하나님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서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6절부터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이 언약궤가 있는 아스돗의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아스돗 사람들은 악성종기가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이 괴롭힘은 삶의 터전인 아스돗의 지역을 황패케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때서야 아스돗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냅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언약궤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고는 언약궤가 자신들과 함께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결론도 함께 내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우리는 의미있게 봐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신 다곤을 친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우리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라면 쉽게 이해하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보기에 여호와 즉 하나님은 이미 자신들과의 싸움에서 패한 아무런 힘이 없는 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힘없는 신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자신들의 신 다곤을 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것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으로 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궤가 아스돗에 도착하고 하루가 지나서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이 잘려지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머리가 잘렸다는 것은 완전한 패배를 뜻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은 능력발휘를 뜻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스돗을 치고 있는 하나님도 그의 손으로 그들을 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블레셋의 승리로 여호와와 다곤의 싸움에서 다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리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기에 여호와의 손이 자신들과 다곤신을 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돌려보내면 모든 일은 쉽게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리품으로 가져온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패하였고, 자신들의 신인 다곤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옮기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가드로 옮겨지면 언약궤로 인하여 발생하는 일들이 멈칠거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을 치는 것은 아스돗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옮겨진 가드에서도 종기가 발생하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악성종기에 걸렸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번역본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마소라 사본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보았던 70인역이라는 성경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가드사람들이 스스로 언약궤를 자신들의 성읍으로 옮겨가겠다는 말을 하며 가져옵니다.
블레셋이라는 민족은 하나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방백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다섯 방백이 연합을 하여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방백은 왕이 아닌 군주가 다스리는 개념입니다. 그러니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옮겨 올 때 한명의 왕이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5군주가 모여서 회의를 통하여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스돗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면서 가드사람들은 자신들은 아스돗 사람들과 다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만한 모습으로 자원해서 언약궤를 가드로 옮겨 왔지만 결과는 아스돗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결국 가드사람들은 언약궤를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이번에는 에그론 사람들이 가져가게 됩니다. 그러나 에그론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오는 것을 격력히 반대합니다. 아스돗과 가드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그론 사람들의 반응은 언약궤가 자신들에게 옮으로 인하여 자신들은 죽게 될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보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만이 자신들의 백성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종기가 생겼습니다. 그 종기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하늘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가 힘을 발휘하여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거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였기에 자신들의 신인 다곤이 하나님을 이겼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손이 다곤 신을 완전히 제압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대와는 다르고,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병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악한 영에 의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 나올 때, 그 악한 영들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때로는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시는 것만으로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악한 영들과 비교도 되지 않고,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많은 악한 영들이 예수님 앞에 선다 할지라도, 힘 한번 발휘 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존재도 예수님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을 보면,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블레셋 사람들이 고통 받거나 죽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나는 것이며, 실제로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진영에 있다가 블레셋 진영으로 옮겨지고, 전리품의 하나로 전락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언약궤는 정말 초라한 물건 정도로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에서 힘 한번 못쓰고 패하게 되었고, 전쟁에서 패한 것만이 아니라,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스라엘을 40년간이나 다스리고 있던 엘리도 전쟁의 여파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에게는 많은 희생과 아픔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만큼 큰 기대를 하였지만, 그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이스라엘과 반대로 블레셋은 언약궤 때문에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는 걱정을 조금 하였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이 언약궤의 힘을 뛰어넘어 자신들이 승리 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언약궤에 대한 인식은 실망과 극복하였다는 자신감으로 인식 되며, 그저 하나의 물건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의 교만과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블레셋이 언약궤를 극복했다는 기대감도 이스라엘의 교만과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깨트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무능함, 하나님의 연약함에 대한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스스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신앙 생활과 사회생활을 동시하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거나, 힘이 없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내가 이 세상 가운데에서 잘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비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잘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의심이나 실망을 하지 않다가도 내가 힘이 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이런 생각을 우리는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시고, 나를 보고 있지 않으시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를 늘 항상 보고 계시며 우리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끄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과 불신앙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약 하였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한결 같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아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하셨으니, 이 이름은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이 아이를 항상 보고 같이 있으면, 이 아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여 주면서 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야할 행동은 의심이나 불평, 불만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하루 하루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한 평생을 고생하였으니 나도 이제 조금은 편하게 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시고,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헛된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이렇게 연약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강건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 뜻 가운데 우리들이 포함되게 하여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