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도서 1:1-15
찬송 : 통일찬송가 234, 235
날짜 : 2014년 9월 21일 오후예배
요약 : 바른교훈의 가르침을 받고 올바른 믿음으로 성장하자

디도서 서론(1-4)

1-4절은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문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울이 사도가 되었다는 것과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바울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이유를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바울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은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노력을 해야지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최고의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을 핍박하는 일에 적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올바른 방향으로 바뀐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은 많은 노력 하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많은 노력과 함께 올바른 방향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는 영생의 소망입니다. 영생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영원한 삶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원한 삶을 소망하였기에 기꺼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가 되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누가 이야기하였냐는 것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 번의 삶이 주어집니다. 그렇기에 한 번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 됩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삶이 언급이 됩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영원한 삶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지도 중요할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다음부터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면, 바울보다 이전에 사도가 된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는데, 그 죄의 해결로 인해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닌 일부로 제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생을 영원 전부터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삶은 모든 인류에 해당이 되는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약속을 3절을 보면,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도로 나타냈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왜 전도라는 단어로 번역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도가 아니라 선포입니다. 그러면 이해가 좀 더 잘 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때에 말씀을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하나님께서 사도가 된 바울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가 된 바울이 같은 믿음을 따라 바울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바로 디도서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디도서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도서를 쓴 사람이 바울이 아니고, 바울이 살아 있을 당시 바울을 따르는 사람이었거나, 바울이 죽은 이후 바울을 따르는 무리가 작성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반대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로마교회에 편지를 쓴 로마서와 비교를 하였을 때, 디도서의 서론이 너무나 길다는 것입니다. 참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디도이며,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가 그레데에 남겨둔 디도에게 쓰는 편지인데 이렇게 많은 설명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자신의 스승 이름으로 글을 써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도 바울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 해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디도서의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로의 조건(5-9)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 가는 길에 그레데를 지나가는 모습이 27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디도라는 이름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디도가 그레데에 남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지만 본문을 보면 바울에 의해서 디도는 그레데 섬에 남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레데에서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그곳에 장로를 세우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레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이제 그곳에서 조직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장로를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디도서 1장에서 장로를 세울 때 자격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장로의 자격조건을 디모데전서에서도 언급이 되는 내용입니다. 장로로 세워지는 조건이 6절부터 나오게 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장로는 오늘 날의 장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도 포함이 되는 단어입니다. 장로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장로의 조건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책망할 것이 많은 사람을 우리의 대표로 두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장로의 다음 조건은 그 가족에 대한 조건입니다.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것과 자녀들은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고, 믿음이 있는 자녀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로가 그 한 사람에 대해서만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보고 장로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회라는 공동체의 일을 하는데 한사람의 노력만이 아닌 가족 전체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족이 하나가 되어 장로의 직분을 감당해야 함을 이야기하며 이제 장로가 될 한사람의 됨됨이를 제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것을 대신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은 비록 내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사용하는데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통하여 내가 어떤 특권을 누리거나 명예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로가 될 사람의 됨됨이는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장로는 교회의 대표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독단적인 또는 자신의 고집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행동들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갖게 만들고, 그로 인해 결국 모임이 분열되는 상황까지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고집대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앞서 언급이 된 청지기적인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자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만이 아닌 원래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고 그 대답을 듣고 결정을 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장로가 될 사람의 됨됨이에 대한 다음 언급은 급히 분내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고,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믿음성 있는)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방금 언급한 조건들은 한번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에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를 세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준을 세워서 장로를 세워야 하는 이유는 장로들이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이 성도들을 가르칠 때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며, 때로는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레데의 특징(10-15)

그런데 그레데에서는 이 조건이 더욱더 강조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10절부터 나오게 됩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선지자들이라고 언급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많은 혼란을 주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구약의 전통을 이어 받아서 할례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유행하는 철학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와서 언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레데에서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즉 교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할례당이 등장하였습니다. 할례당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우리는 할례당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는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할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그레데에서는 복종하지 않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할례당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이 할례당은 더러운 이득을 얻으려고 마땅하지 않은 것들을 가르쳐서 집들을 온통 뒤엎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런 할례당의 문제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할례당이 할례를 주장하는 이유는 할례를 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마땅하지 않은 것들을 가르침으로 문제점들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올바른 장로가 그레데에 선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레데에 있는 그들의 선지자가 한 말도 언급이 됩니다. 크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들이며 먹는 것만 탐내는 게으름쟁이들이다라고 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레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레데에 있는 사람 가운데 선지자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만큼 그들의 그레데 사람들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레데 사람들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 진실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거짓말쟁이며, 게으른 사람들을 엄하게 꾸짖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이 믿음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유대인들의 허황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한 자들의 명령에 주목하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허황된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추정이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16절에서 표현하기로 역겨운 자들이고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며 모든 선한 일을 배척하는 자들이다입니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디도는 그레데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레데에 디도가 남겨진 것은 그레데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장로를 세위기 위함이었습니다. 장로를 세워서 그레데 사람들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할례당을 조심해야 하며, 그레데사람들의 잘못된 성향을 꾸짖어 바르게 인도해야 하며, 유대인들의 허황된 이야기에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곧 세워지게 될 장로입니다.

장로로 세워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로 세워져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장로는 바른교훈을 가르치고 책망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바른교훈에 대한 관심이 늘 있어야 하며, 책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장로의 조건에 기본으로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난 장로 또는 목사가 아니기에 나와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는 올바른 가르침으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그렇기에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순종함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과연 올바른 가르침인지에 대한 분석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불신을 갖으라는 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의문이 든다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으로 확실한 답을 얻어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올바른 신앙에서 생활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장로는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망도 함께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부족함이 있어 알고 있지만 잘못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알지 못하여 잘못을 하는 경우도 있구요. 이때 장로는 그 잘못을 언급하며 책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책망을 받는 자들은 그들의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날 책망한다고 하여 반감을 갖고, 이 공동체에서 뛰쳐나가거나 무조건 장로의 반대편에 서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장로가 세워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믿음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 대한 책망은 나를 올바른 믿음으로 가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디도서의 내용을 함께 보았습니다. 디도서에서 성도들을 올바른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장로를 세울 때의 조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장로가 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세요. 장로들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갖고 성도들을 대하며, 그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치고, 때로는 책망을 할 때 성도들은 마음의 상처가 아닌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도와주세요. 하나님 이 시대의 교회가 올바른 믿음에 관심을 갖게 하여주시고 때때로 책망을 할 때, 하나님 나라 이외의 것들로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여주세요. 성도들도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삶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