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8b-30

서론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바울의 이런 상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전파가 중단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복음이 더욱더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울 자신에게는 기쁨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바울에게 또 다른 기쁨이 19절에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움입니다. 이것으로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구원은 단어 그대로 ‘죄에서 건져주시는 것’ 입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간구라는 말이 있으니 ‘감옥에서 나오게 될 것’ 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을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

바울은 큰 고민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23절을 보면 두 가지의 상황에 끼어 있습니다. 이 상황은 유명한 작가 세익스피어의 헴릿에서 나오는 명대사와 같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1절이 첫 번째 상황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 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어느 분께서 찾아서 읽어주시겠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는 빌립보서처럼 바울이 갈라디아서교회에 쓴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갈라디아서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있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득차서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내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사는 삶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늙어 버린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우울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큰 유익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22절을 보면 바울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바울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사역의 열매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이 살아 있으면 복음을 전하며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열매로 대표적인 예가 바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지요.

이처럼 바울이 살아 있음으로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자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역의 열매가 맺히기는 하였지만 모두 완전한 열매가 아닙니다. 아직 덜 익은 열매도 있기 마련입니다. 바울이 살아 있으면서 아직은 덜 익은 열매를 잘 익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끼어 있다 말하는 상황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택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의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바울의 결정은 24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내용에서처럼 이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인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고민되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린 바울은 25절과 26절에서 자신의 결정이 변함이 없을 것을 말 합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진보와 그들의 기쁨을 위하여 감옥에서 나와 다시 빌립보교회에 갈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선택결과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자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고난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겨내고 빌립보교회에 온다는 것은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기대를 갖고 있었던 사람 모두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26절에서 바울은 감옥에서 나와서 빌립보 성도들과 만남을 약속합니다.

27, 28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계속 육신을 입고 살아 갈 것이며, 조만간에 빌립보교회에 방문을 하겠으니, 빌립보 성도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상황은 곧 해결 되는 것이니 믿음이 흔들린 성도들이 다시 자신들의 신앙을 재정비하여 올바른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난을 극복하고 빌립보교회에 돌아온다 하더라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바울이 살아서 다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만난다 하여도, 감옥에 갇힌 것이 복음 때문이니 복음으로 인해 고난이 다시 찾아 올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에 대한 답을 29절에서 말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신 것 이지요. 우리는 믿음으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값없이 거저 주신 은혜를 받아서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공식은

은혜 = 믿음 + 고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빌립보교회가 있던 시기에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들이 유행이었고, 예수님은 로마의 식민지 가운데 한곳 이스라엘, 그중에서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신 분이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신으로써 폼이 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조롱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조롱만 당한다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빌립보도시에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 때문에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고난입니다.

바울이 제시한 공식은 ‘은혜 = 믿음 + 고난’ 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은 예수를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30절을 보면 바울 혼자서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도 고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분명히 고난이 맞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입니다. 그 고난은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싸움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싸움입니다. 그러니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죽지 못해서 살아가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비록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까? 우리 모두기 이 질문에 바울과 같이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삽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 할 수 있는 힘과 도움을 허락해주세요.

축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원하는 모든 이들과 은혜로 인해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살기 원하는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하심이 영원히 함께할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