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463장
날짜 : 2015년 3월 1일 주일예배
요약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삶으로 드러내자.
서론
저와 함께 주일에 사무엘상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에 일어난 이야기가 기억이 나실까라는 쓸 때 없는 생각에 앞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명이 아내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매년제를 드리기 위하여 실로에 온 한나는 하나님께 울며 기도를 드리며 밤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제사장으로 있던 엘리는 한나의 모습이 술 취한 모습으로 착각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을 하셨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게 된 한나는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사무엘을 제사장 엘리의 제자로 들어가 평생을 하나님 앞에 살게 합니다. 사무엘이 엘리의 제자로 살아가는 시간은 지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엘리의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블레셋이라는 민족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블레셋과의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큰 패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에서 패하게 된 이유를 언약궤가 전쟁터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실로에서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지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결국 패배를 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였다는 소식을 엘리가 듣게 되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져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엘리의 죽음(12-18)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여하였던 베냐민 지파의 한 사람이 실로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면 누가 봐도 전쟁에서 승리는 하지 못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성에 들어와 전쟁의 상황을 보고 하였을 때, 성안은 울음바다고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소식을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 엘리였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궤가 전쟁터에 있다는 것으로 인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의 모습은 언약궤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동안 엘리가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엘리에게 언약궤는 제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언약궤라는 결론을 비록 장로들이 내렸지만,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 갈수 있도록 최종 결론을 내린 사람은 엘리입니다. 엘리도 언약궤에 대한 믿음이 백성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엘리와 함께 하시지 않거나, 언약궤가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한다는 엘리의 판단미스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에는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다는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에게 더 큰 충격은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엘리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 뒤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게 됩니다. 사무엘서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엘리가 의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진 이유를 나이가 많고, 몸이 비대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무엘서 저자가 이런 표현을 하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엘리는 나이가 많았기에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고, 그로 인하여 엘리는 자신의 아들이 하나님에게 저주 받는 일에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가 몹시 뚱뚱하였다는 것은 엘리의 부패한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집중하였던 모습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엘리는 사사로 40년을 살았고, 9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이가봇의 탄생(19-22)
이러한 일이 발생한 시기는 엘리의 아들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을 하여 출산이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출산이 가까운 시점에서 비느하스의 아내는 언약궤를 빼앗겼고, 그 충격으로 그의 시아버지와 자신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은 가족 누구에게나 큰 충격입니다. 그런데 출산을 앞둔 임산부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곧 진통이 시작이 되었고 그곳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느하스의 아내도 서서히 죽어 갑니다. 그녀의 출산을 돕던 주위의 여자들이 비느하스의 아내를 위로하기 위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냅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마음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지으며,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이유가 언약궤를 빼앗겼고, 자신의 시아버지와 남편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영광이 떠남과 함께 태어난 아들 이가봇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전쟁에서 패하였으니 블레셋의 요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괴롭히게 될것입니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사의 자리가 비게 됩니다. 안그래서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이 자주 등장하지 않던 시대였는데,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의 등장이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 이후의 사사인 사무엘의 본격적인 활동은 언약궤를 빼앗긴 후 20년이 지나서야 시작이 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예수님에게 12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제자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아보라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그다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있는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 풍요로움은 있었다 할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자신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12명의 제자를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시고 자신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12명이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잘남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선택, 즉 은혜로 12명의 대표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사사시대에 사사가 되는 인물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어떤 사사는 겁쟁이었으며, 어떤 사사는 안하무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을 하였는지 기록조차 없는 사사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능력 없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시어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신분이십니다.
결론
엘리가 사사로 어떤 일을 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 언급이 없습니다. 또한 엘리가 사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엘리가 죽을 때야 알게 됩니다. 비록 시대가 사사시대이며, 엘 리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이긴 하지만, 그가 사사 일거라는 기대를 우리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엘리가 사사였다는 말을 듣게 되기 때문에 충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사사였습니다. 엘리가 사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사들처럼 그의 능력이 충만하여 그를 사사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의 부족함을 채워서 사용하시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의 사사경력이 40년 동안 일관되게 사무엘서에서 등장하는 모습으로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에게 올바른 쓰임을 받는 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무엘서를 통하여 보는 엘리는 영적인 눈이 어둡고, 몸은 비대하고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의 저주로 인도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사였다는 것을 그가 죽을 때에서야 알게 됩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나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평상시 나의 모습이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동일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지를 드러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말은 “저는 목사입니다. 저는 권사입니다. 저는 장로입니다. 저는 사모입니다. 저는 교회 다닙니다.” 등등의 말을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제가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자신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전혀 그럴지 몰랐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도 그 말 듣고 말은 못했지만 깜짝 놀랐습니다. 이 친구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며 살아야 합니다. 말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하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밝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가봇이 세상에 등장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만, 말씀 한 구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42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삶으로 밝히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우리가 엘리처럼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 장례식장에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때서야 “이 사람 교회 다녔었어?”라는 말을 듣는 자들이 되지 않겠습니다. 또한 입으로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고 행동은 전혀 다르게 살아가지도 않겠습니다.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밝히는 자들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연약합니다. 다짐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때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셔서, 결국 우리들의 다짐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