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3:1-21
찬송 : 323장
날짜 : 2015년 1월 18일 주일예배
요약 : 영적인 것을 구분하며 살자.

서론

사무엘상 3장부터는 사무엘이 직접 등장하여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동안 사무엘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3장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과 함께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귀하고, 환상도 나타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본문을 통해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무엘(1-3)

우리가 이미 앞의 말씀을 통하여 어린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부터 다윗왕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사가 다스린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한 공통된 기준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가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무엘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맞물려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이나 환상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잘 안보이던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들어갔고, 사무엘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언약궤 앞에 있는 등불 아래 누워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성전 안에 있는 증거궤 앞의 등불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입니다(출 27:20-21). 그런데 이 일을 제사장이 아닌 어린 사무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무엘이 제사장이거나 제사장 후보생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마땅히 제사장인 엘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 일을 사무엘이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밤을 지새우며 언약궤 앞의 등불을 지키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사무엘이 언약궤 앞에 누워있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 모습은 단순히 누워서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고대근동에서 신들에게 개인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듣기 위하여 행하여졌던 풍습입니다. 이것을 인큐베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는 이미 이러한 장면을 1장에서 보았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 문제의 해결책을 받고자 성전에서 기도하며 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나의 이런 모습은 본문에서 사무엘이 언약궤 앞에 있는 등불을 지키면서 하고 있는 행동과 동일한 것입니다. 즉 사무엘이 지금하고 있는 행동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겠지요. 사무엘이 하고 있는 행동은 어린 사무엘이 아니라 당연히 제사장인 엘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엘 리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사무엘이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엘리의 부정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서의 저자는 엘리의 눈이 어두웠다는 말을 우리에게 해주면서 엘리의 영적인 모습도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엘리의 모습을 통해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모습도 눈 어두어 볼 수 없는 상황임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꺼져가고 있을지라도 아직 등불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4-13)

영적으로 깜깜한 시대를 살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들립니다. 3장 1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 시대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은 모두 4번이 등장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경험해 본 사람이 없기에 어쩌면 이 4번은 적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처음 들렸을 때, 사무엘은 자신을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자신을 부른 음성을 들은 사무엘은 잠을 자고 있는 엘리가 자신을 부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엘리가 잠자고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다는 말과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대답뿐 입니다.

그리고 다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듣습니다. 이번에도 앞에서와 같이 동일한 행동을 하지만, 동일한 대답을 듣게 됩니다. 7절을 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왜 엘리를 찾아갔는지 설명해줍니다. 그때 사무엘은 하나님을 아직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에 사무엘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무엘이 하나님을 몰랐다는 말은 말 그대로 사무엘이 하나님을 몰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 제사장의 제자이며 성전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무엘이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사무엘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몰랐던 사무엘은 다시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3번째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들렸습니다. 이번에도 사무엘은 엘리를 찾아갑니다. 엘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고 계시고 있음을 눈치 채게 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니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말씀하소서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도 엘리의 영적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제사장 엘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들린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한 번에 인식하지 못합니다. 사무엘에게 들린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영적인 눈이 아닌, 짐작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제사장 엘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엘리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 이어서 또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4번째 음성을 듣고서야 하나님께 반응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계획하고 있으신 일이 있는데,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일은 바로 엘리 제사장을 심판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사무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14-)

엘리에 대한 심판은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전달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시작하시려 합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스승이며, 제사장인 엘리의 심판이 곧 있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엘리가 심판을 받는 이유는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의 아들들이 저주 받을 짓을 하였으나, 엘리가 책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죄는 예물이나 제물로 영원히 속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이 환상을 엘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모든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싶어 하였고, 사무엘은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대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하나님을 지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무엘의 성장과정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으며, 많은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의 입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한라에서 백두까지라고 표현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 이후에 실로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사무엘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언약궤 앞에 누워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사무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무려 4번째 음성이 들렸을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무시하고 협박하는 가운데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결론

우리들이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 시켜주었고, 우리는 그분을 알아가면서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태어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누군가의 소개와 가르침 등과 같은 것들을 통하여 지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적은 것을 아무리 많이 쌓고 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사랑하였고, 그들의 머리에는 구약성경책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많은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 메시아인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거부하고 탄압하였습니다.

이처럼 지식을 많이 쌓아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성경을 100독을 했다 1,000독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의 의미와 뜻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원한다면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기 어려우니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현상을 바라봐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자신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은 제사장 엘리의 모습과 반대되게 영안이 열려 있어서 예언을 하고, 방언기도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많이 하라고 권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영적인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영적인 것을 모두 분별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계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이 영적인 모든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것을 구별하게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3장 6절을 보면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성령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이 영적인 구별하게 하실 때, 특별한 기준이 없이 우리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조절하여 구별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절 26절을 보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내용들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의 밑도 끝도 없는 감정, 생각, 꿈, 환상 등을 통하여 우리가 영적인 것을 구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기반으로 영적인 것을 구별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말씀에 대한 지식의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갖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성경 말씀에 대한 지식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영적인 눈이 어두워 결국 심판을 받게 될 엘리가 등장합니다. 우리 모두가 영적인 눈이 어두워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을 저지르른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성령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말고 지식과 영적인 것에 균등하게 집중하여 하나님 앞에 기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성경공부 합시다.

기도

하나님! 영적인 것을 분별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엘리도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고 사무엘도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지만, 엘리는 결국 실패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가 부름 받았지만 우리들의 잘못으로 하나님께 심판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저희들을 지켜주세요.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자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영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열심을 내기 원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