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2-18a

서론

바울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고 있을 때,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임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는 복음의 전파가 멈추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생각과 다르게,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오히려 복음의 전파가 이루어지고 있고, 오히려 자신은 기쁘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 어떻게 복음의 전파와 연결이 되는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에게 일어난 일

12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전파가 되고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에게 일어날 일은 13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사슬에 매임 즉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이 빌립보서가 기록된 시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7절에서 이미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찾아와서 변론을 해주었다고 이야기하였지요. 이처럼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는 시기는 바울의 노년의 시기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사역을 노년의 시기까지 열심히 하던 도중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 감옥에서 자신의 인생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평생을 복음전파의 대표주자로 살아왔던 한 인물이 결국 감옥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 가운데 “이제 복음의 전파가 멈추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상황이 복음전파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활발한 복음전파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대신 복음을 전하고 있는 무리를 이야기 합니다. 그 무리는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시기와 다툼으로,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는 무리입니다.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함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시기와 다툼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살아 있을 당시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의 시간에 복음전파는 어느 특정한 사람만을 통하여 진행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울이 살아 있을 당시에도 바울뿐만 아니라 비록 처음에는 연약한 모습이 있었지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던 아볼로, 누가, 디모데 등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일에 함께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큰 인물이다 보니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바울에게 집중 되었을 뿐이지 바울만이 복음전파를 위해서 노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많이 받고 싶은데, 바울이라는 큰 인물로 인해서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무리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가 그들 자신들에게는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옛말에 “사자가 없는 곳에서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이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더 이상의 복음 사역을 할 수 없으니, 자신들이 복음을 열심히 전하여 바울의 위치에 자신이 올라서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을 시기와 다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복음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바울에게 괴로움이 더 할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바울과 경쟁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우리들을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시작합니다. 그 경쟁에서 밀리면 불안해하고, 그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저희 가정에 한빛이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크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희는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표준체중, 표준키를 보니 한빛이 미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기뻐하였던 것이 이제는 근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경쟁이 아닌 것 같은 것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보니 우리들은 경쟁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전에 “세상은 1등만 기억합니다”라는 말이 광고로 등장하였습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오로지 1등만 기억을 한다고 이야기하였지요. 그 말이 나왔을 때 어느 누구도 그 말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1등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경험을 해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는 1등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니가 1등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야, 노력을 좀 더 한다면 넌 1등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1등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또 똑같습니다. 1등이 안됩니다.

그 이유는 얼마 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리고 있는데, 하늘에서 편안히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라가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1등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쟁에서 계속 실패를 하다보면 둘 중 하나의 결론을 내게 됩니다.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편법,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포기를 해버리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요. 그동안 내가 노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모두 포기해버린다는 것은 자존심이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다른 방법인 편법, 불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경쟁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쟁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너무 과도한 경쟁은 결국 처음에 생각했던 목표와 다른 곳에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기와 다툼 그리고 누군가를 괴롭게 하기 위한 경쟁은 생각지 못한 문제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입니다.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함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반면에, 14절을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인해서 주님을 신뢰하며 더욱 겁 없이, 담대함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바울이 감옥에 갇혔으니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은 같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들은 기존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하여 소명을 받았지만, 삶에서 소극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생각에는 ‘바울이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느니 나는 조금 쉬엄쉬엄해도 되겠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겠죠.

그러나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16절을 보면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세워졌다는 것을 알기에 사랑으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의 상황이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일깨워줬고, 이들은 바울과 경쟁이 아닌, 바울과 협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니 기뻐한다

이러한 두 부류의 집단이 형성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경쟁하는 집단에 문제가 있고, 협력하는 집단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울은 어느 한쪽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그리스도께서 전파되고 있으니 기뻐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찌되었든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기만 한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업 잘되게 해주고, 건강하게 해주고, 문제해결해 주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의 요정 지니와 같은 존재로 예수님을 알고 있는 분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바울과 경쟁하려는 사람들과 협력하려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앞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전하는 자들을 철저히 경계 하였던 바울입니다.

그러니 바울과 경쟁을 하려 하였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 원한다면 수준이 비슷해야 경쟁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한쪽이 월등하게 수준이 높거나 전혀 다른 내용인데 경쟁을 하자 한다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 바울과 경쟁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엉뚱하거나 잘못된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닌 바른 것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협력하려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음은 혼자서 무엇을 하려는 사람들이 아닌, 협력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부족함은 함께 협력하는 사람을 통하여 채워가며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두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의 숫자가 커져 가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이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 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회복을 위하여 십자가 돌아가시며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행위적인 모습이 결코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한국교회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행위적인 모습들이 강조되었습니다. 소위 말해 하나님께 예쁜 짓을 많이 해야 한다고 그랬지요. 또한 아직 믿음이 없더라도 행위적인 모습을 꾸준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긴다는 것도 강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이 지적하시고, 그렇게 많이 싫다고 하셨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처럼 중심이 빠져버린 행위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주장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행위가 필요 없다고 절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행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반드시 믿음이 최우선이 되어서 그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먼저 제대로 알고 올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 시작입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복음전파가 되어가는 모습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먼저 나 자신이 복음의 전파에 얼마만큼의 관심이 있는지와 복음전파를 위해 내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고, 나의 결심이 있다면 하나님께 결심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