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2:27-36
찬송 : 94장
날짜 : 2015년 1월 11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자가 되자.

서론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한나와 엘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을 잠시 보았습니다. 이 둘의 자녀양육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키웠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그의 아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런 차이점으로 인해 자녀들의 삶에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에 실패한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은혜를 경험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엘리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27-29)

본문의 시작은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지자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이 사람을 선지자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지자의 개념이 이스라엘 왕조가 설립된 다음에 등장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9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선지자가 아닌 선견자라는 호칭으로 불리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친절하게도 선견자와 선지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설명을 우리에게 해줍니다. 그러니 본문에서 시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적으로 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엘리의 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에게 직접적으로 전달이 되지 않는 부분은 본문 이후의 이야기에서 또다시 등장 합니다. 엘리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 엘리의 영적인 부분을 알 수 있으며, 이 영적인 부분은 오늘 본문의 핵심이 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엘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엘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첫 말씀은 과거를 회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이집트에서 바로에게 속하여 노예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거나, 힘이 없는 하나님으로 인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집트 생활 초기는 조상 야곱의 가족의 영향력으로 인해 그곳에서 귀빈 대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신분은 귀빈과 전혀 다른 삶인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을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런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아직도 자신은 살아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당시 강대국이며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리고 있었던 이집트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가 그들은 놓아주려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크신 능력으로 태양신의 아들 바로의 계획을 실패로 만드셨고, 강대국의 신인 태양신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큰 힘이 있으심을 스스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 엘리의 조상인 아론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자손을 통하여서 제단 위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화제 제물을 그의 자손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자손들에게 큰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큰 복을 아론의 자손에게 영원히 맡기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엘리는 이 모든 것이 영원히 자신의 몫이 될 거라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잘못된 모습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엘리의 잘못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처소에 관해 명령한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소의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는 것은 그것을 도둑질 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미 우리는 2장 12-17절을 통해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어떻게 도둑질 하는지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예물과 제물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흡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먼저 그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행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엘리의 두 번째 잘못은 첫 번째 잘못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잘못은 엘 리가 직접적으로 행한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의 아들이 행한 잘못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엘리도 그의 아들과 같은 행동을 하였을 수도 있기에 엘리의 잘못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번째 잘못은 정확히 엘리의 잘못으로 연결이 됩니다. 엘리는 하나님보다 그의 아들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곧 하나님보다 그의 자식들을 더욱 사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보았던 말씀에서처럼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징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중범죄에 해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보며 엘리가 취한 행동은 그들을 한번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엘리의 마음이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들을 꾸짖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의 아들을 더욱 사랑함으로 인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 한번 이야기하고 마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엘리의 이런 자식에 대한 사랑은 결국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오는 예물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들을 자신들이 가져가 자신들의 살을 찌우게 하고, 하나님께는 좋지 못한 것을 드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엘리가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아들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30-36)

이런 모습을 보이는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엘리가 안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자손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번복 하시겠다는 것 입니다. 엘리는 하나님께서 아론과 약속을 하셨기에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욱더 사랑하여도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은혜를 거두워가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자손과 함께 하시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변덕이 있으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근동의 세계관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변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론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기에서는 포인트가 약속입니다. 약속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요구나 실행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다면 우리는 “노예계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요. 약속은 양쪽에서 모두 자신의 역할과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론의 자손에게도 이런 의무와 역할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자손들에게 약속을 변함없이 이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론의 자손인 엘리는 하나님을 멸시하며, 자신의 아들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땅히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도둑질 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엘리는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쪽의 약속 불이행은 그 약속의 파기로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하셨던 약속을 번복하신 것은 하나님의 변덕에 의한 것이라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고, 엘리의 모습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엘리의 후손들과 함께 하시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대체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엘리의 후손과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시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존귀하여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와 그의 아들은 지금 당장 그런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적임자를 찾으시겠다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그를 멸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에서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엘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3가지가 제시가 됩니다. 첫 번째는 엘리의 후손들이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 사무엘서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실제로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젊은 나이에 같은 날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엘리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참여하지 못할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부러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사장 가문이라는 명예에 걸맞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의 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구걸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36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대제사장이 바뀌는 역사가 엘리 시대에 바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얼마 가지 않아서 발생하게 되는데 그때가 솔로몬 왕이 다스릴 때입니다. 솔로몬시대의 대제사장이 아비아달에서 사독으로 변경이 됩니다. 사독은 솔로몬의 선대왕인 다윗 때에만 하여도 평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이 계기가 되어 솔로몬 때에 아비아달은 해임이 되고, 대제사장이 사독으로 교체가 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데 엘리는 하나님과 동행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정신이 쏠렸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하는 엘리는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을 취한 인물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바로 아담입니다. 아담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었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더 이상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실패가 아담의 실패와 비슷한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엘리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다른 누군가를 찾으셔야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대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귀한 자를 찾으셔야 했습니다. 그 존귀한 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택으로 아담과 엘리는 자신들이 누리고 있었던 것들을 잃게 되었으며, 그로 인한 영향력은 그들에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셨으며, 이 땅에 사시면서도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셨으며 그것이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엘리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실패를 하였지만,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을 수 있도록 늘 우리를 중보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결론

엘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직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은혜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엘리와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거나 하나님보다 더 사모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미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고 말하면서 내 생각과 나의 욕심 등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다는 불평을 쏟아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주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이러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올바른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과 이 세상 어떠한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동행하는 삶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