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통일찬송가 300, 307
날짜 : 2014년 8월 10일 오후예배
요약 : 내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모압으로 이민간 엘리멜렉 가족(1-5)
엘리멜렉이라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은 베들레헴에서 살았는데, 그곳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먹고 사는 것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가족은 모압지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민족과 함께 살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떠나 모압지역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가뭄이 일어났기 때문에,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압지역으로 이민을 결심하였습니다. 이 가족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살고 있던 시기가 바로 사사가 다스리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사사가 다스리는 시기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이, 순간순간 어려움이 발생하면 사사라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며 살던 시대였습니다. 사사가 다스리던 시기를 성경에서 한마디로 요약을 하고 있는 말씀이 사사기의 가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처럼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망설이지 않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가족도 가뭄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모압이라는 지역으로 이민 가는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가족의 구성원은 남편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이 가족은 자신의 눈 앞에 놓여진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모압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지요. 모압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갖고 이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리더인 엘리멜렉이 죽고 말았습니다. 나오미에게 남아 있는 아들들은 모압지역에서 모압여자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10년 가량이 되었는데, 두 아들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큰 기대감을 갖고 떠나온 이민 생활에서 한 가족이 3명의 과부로 구성이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생활에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과부와 고아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모압 이민 생활은 결과적으로 대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6-22)
실패적인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나오미에게 고향에서 발생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보리 수확을 하는 시기에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자신들에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이 되어서 고향인 베들레헴을 떠나왔는데, 이민 생활은 실패와 다름이 없었던 찰나에 고향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의 고향이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은 나오미로 하여금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심은 바로 고향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실패적인 이민생활을 정리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것은 자신과 동일한 상황에 처한 며느리들을 자신의 어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놓아주는 것이었습니다. 8절을 보면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축복을 하며 각자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며느리의 반응은 나오미의 생각과는 다른 대답을 하였습니다. 둘다 자신의 어머니 집에 돌아가는 것을 거절하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다시 그들에게 각자의 어머니 집에 돌아가라고 설득을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고엘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고엘제도는 첫째 아들이 결혼을 하였으나 자식이 없이 죽음을 맞이하면, 둘째 아들이 형수와 결혼을 하여, 가문의 대를 잇는 제도였습니다. 당시 가문을 중심으로 생활을 하는 사화였으며, 그 가족에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노동력과 다른 부족이 쳐들어올 때 방어할 전투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가족에게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모두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니, 만약 나오미에게 다른 아들이 있다면, 그 셋째 아들은 형수와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하는 말은 자신은 이미 늙었고, 아들을 낳는다 할지라도 그 아들이 자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리니 각자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아들 기룐의 아내였던 오르바는 나오미의 말대로 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말론의 아내였던 룻은 여전히 나오미의 곁은 떠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르바의 행동과 룻의 행동이 차이점을 보이기 시작을 하고 있지만, 오르바의 행동은 결코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비난을 당할 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나오미의 진심에서 나오는 말과 나오미가 축복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룻의 행동과 비교를 하였을 때, 조금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나오미는 15절을 보면 다시 룻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룻은 자신들과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된,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16-17절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나오미가 있는 곳에 룻도 있고, 나오미의 백성이 룻의 백성이 되며, 나오미의 하나님이 룻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는 날까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룻의 이야기에 더 이상 나오미도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과 함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하니 온 성이 이 두여자로 인하여 떠들썩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난지 10년이 더 지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떠들썩하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나오미가 베들레헴에서 유명한 가족의 구성원이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유명한 사람들의 가족사항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것과 비슷하겠지요.
사람들이 나오미에게 “나오미가 아닙니까?” 라고 이야기를 하니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20절에 있습니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음이니라” 나오미라는 이름이 뜻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오미가 자신을 부르라고 했던 “마라”라는 뜻은 “쓰다, 고통”이런 뜻입니다.
그러니 나오미는 자신에게 기쁨이 아닌 고통으로 부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자신이 고통을 받는 것은 전능자 곧 하나님께서 자신을 괴롭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왜 하나님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상황을 본다면,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10여년 전에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었을 때, 이들은 모압이라는 곳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21절을 보면 자신은 풍족하게 베들레헴을 떠났다고 이야기 합니다. 베들레헴이 가뭄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많이 있었지만, 나오미의 가족은 풍족하게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나오미의 가족이 모압으로 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배가 고파서 이민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풍족함을 나눠주기 싫음이 있어서 베들레헴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떠난 여정에서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을 보기에 민망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고통이라는 의미의 단어인 마라로 자신을 부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미는 풍족한 상황에서 남편과 두 명의 아들과 함께 베들레헴을 떠났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풍족함과 그리고 남편, 두명의 아들을 다 잃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동일한 처지에 있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살았던 시대가 사사들이 다스리는 곧 자기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서만 모든 것을 하는 시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성경에서 그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는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왕이 없었기에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야 했다는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진정한 왕인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자기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을 하였다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면서 살고 있는 시대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의 본문에서 소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유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인 모압지역까지 이민을 간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모세가 가르쳐준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가족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말을 나오미가 합니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다(20)”
룻기의 내용은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아직 어느 한부분만을 짤라서 이야기하고 결론을 내리기에 어려움이 있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1장의 내용을 보았을 때, 우리들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합니다. 바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은 결고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나오미의 가족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서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베들레헴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긴 하였지만,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보리를 추수할 때 풍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오미의 가족과 풍년을 맞은 베들레헴의 사람들은 대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 원하신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내 중심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는 생활을 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생활을 할 때, 비록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이 손해이고, 옳은 선택인 것 같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들이 내 중심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다림에서 베들레헴이 풍년을 맞은 것처럼 예수 다시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모두 갚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어야 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살면서 내 생각이 최우선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마음이 최우선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가 엉뚱한 곳에 있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결심합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들이 이러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