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199장
날짜 : 2015년 1월 4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알고 가르치자.
서론
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밝고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습니다. 새해 첫 주일 예배이니, 기존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는 이전에 함께 보고 있었던 사무엘상을 계속해서 보기 원합니다. 올 한해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저와는 사무엘상을 계속 보게 될 텐데, 올해 안에 사무엘상을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사무엘상을 보면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상을 2장 17절까지 보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사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고향 라마에서 매년제를 드리기 위하여 실로로 여행을 하는 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그 가족의 가장인 엘가나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나라는 아내는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괴로움이 컸지만, 사랑한다 말하는 남편과 영안이 떠있을 것 같은 제사장 등으로부터 위로 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황과 고통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들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이 가운데 한나는 고통과 좌절의 상황에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과 기쁨의 시간을 나누는 것도 잠시,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하였던 것처럼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하나님의 곁에 있게 하기 위하여 엘리 제사장에게 그를 보냅니다.
그리고 성경은 엘리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주며, 엘리 아들의 모습과 사무엘의 모습을 우리에게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인 한나와 엘리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나의 양육(18-21)
사무엘은 고향 라마가 아닌 실로에서 엘리 제사장의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기는 일을 하며 지냅니다. 에봇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만이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옷을 내가 선택하여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입지 못하는 옷도 있습니다. 경찰복, 군복, 각종 회사의 유니폼 등이 있습니다. 이런 옷들은 단순히 옷의 개념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은 경찰이고, 군복을 입은 사람은 군인인 것처럼 말입니다.
어린 사무엘이 에봇을 입었다는 것은 제사를 드릴 때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무엘을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섬기며 예배드릴 때의 나이가 어렸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두었으면 합니다.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있다면 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이 아이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섬기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기 위하여 실로로 올 때마다 작은 겉옷을 만들어 사무엘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한나는 많은 고통의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 사무엘과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한나가 아들의 겉옷을 만드는 것은 사무엘을 사랑하는 다른 표현방식입니다. 늘 함께 있고 싶고,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사무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1년에 한번 씩 드리는 매년제의 시기 때 잠시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사무엘을 그리워하는 한나의 마음이 큰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사무엘에게 줄 겉옷을 만들 때,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정성이 들어갔음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을 보면 엘리가 한나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가 한나를 축복하는 이유가 제사장으로 당연해 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와 한나의 첫 만남은 엘리의 섣부른 판단으로 인한 실수와 그의 영안이 어두워졌음을 암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런 엘리가 한나를 축복한다는 것은 한나가 사무엘의 겉옷을 만들어 사무엘에게만 전달 한것이 아니라 엘리를 섬기는 일도 하였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한나를 향한 엘리의 축복기도는 하나님 앞에 바친 사무엘을 대신하여 다른 자녀들을 더 얻을 수 있기를 원하는 축복기도입니다. 한나가 임신을 하지 못하였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엘리의 행동은 이제야 제사장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잠깐 축복이라는 단어를 집중해보겠습니다. 축복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일상에서 참 많이 사용할 것입니다. 성경과 찬송에서 축복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축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주의를 해야 합니다. 축복은 한문인데, 빌 축(祝)자에 복 복(福)자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복을 빌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엘리가 한나에게 축복을 하였다는 표현은 ‘복을 빌어준다’는 뜻으로 옳은 표현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축복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에게 사용하면 그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우리를 축복해주세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복을 누군가에 빌어 내가 복을 받게 해달라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 축복해주세요”라는 말을 과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 못되니 다른 신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빌어 내가 복을 받게 해 달라는 말리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십니다. 그러니 축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사람이 사람에게 “축복합니다.”라는 표현은 옳은 것이 되겠지만, 하나님에게 “축복해주세요” 라는 표현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축복이라는 단어를 신경 쓰며 사용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엘리의 축복기도를 받은 한나는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됩니다. 한나가 이렇게 사무엘이 아닌 다른 아이들과 생활을 할 때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양육(22-26)
22절부터는 엘리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는 매우 늙었음을 강조하며 이야기는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그가 자신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행한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는 그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꾸짖습니다.
그들을 꾸짖는 내용은 ‘이제 잘못하는 행동을 그만해라 너희들의 행동은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다른 사람의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시지만,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위해 간구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엘리의 이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범죄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를 한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변경할 수 없기에 그 사람을 위하여 도움을 청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이며,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쉽지 않지요.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부정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가 용서를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엘리의 아들들은 이런 엘리의 꾸지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도 자신의 아들들의 잘못을 꾸짖는 것이 그때 한번인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 이유는 엘리의 나이가 매우 늙었다는 것이 힌트가 될 것입니다. 엘리의 나이가 매우 많으므로 아들들의 나이도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30대는 넘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임명을 받는 나이가 30세 근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자신의 아들들이 다 컸으니, 꾸짖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들을 꾸짖어 돌이키게 할 만한 기력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을 찾아 볼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홉니와 비스하스의 잘못을 이미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엘리의 꾸지람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앞날을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엘리가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꾸짖으며 말한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의 실수를 돌이킬 수 없다고 표현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엘리가 볼 때, 홉니와 비느하스의 잘못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드는 즉 백성들을 향한 잘못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으로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엘리의 잘못은 자신의 아들들이 분명히 잘못을 하고 있으며, 그 잘못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 잘못을 구하고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의 아들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하였습니다. 엘리는 자신의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하였고, 아들들의 나이가 차있다는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그렇듯이 변명은 변명일 뿐 그것이 결과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우리는 본문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비록 죄가 있지만, 그분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은 자로 삶을 사시며,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운데 선택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던 12명의 제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이익과 서로간의 경쟁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 가운데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습은 끝까지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올바르게 형성되게 하시기 위한 행동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한나와 엘리의 양육방식에 대해서 간단하게 보았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아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양육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싶은 정말로 귀한 아들을 하나님의 곁에 두고 살게 하면서 늘 자신의 아들인 사무엘을 잊지 않고 해마다 겉옷을 만들어 주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한나의 이런 모습과 다르게 엘리는 자신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그의 자식들의 모습을 돌이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돈, 명예, 건강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나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본문뿐만 아니라 사무엘상에서 한나에게 가장 중요하였던 것은 자식이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얻지 못하여 구박과 서러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형성하려는 모습을 보였을 때,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자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나는 사무엘 이후에 5명의 자식을 더 얻게 됩니다. 한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엘리는 자신이 제사장이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매우 늙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중요함을 잊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자식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엘리의 모습은 결국 자신의 아들들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 길을 재촉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한나와 엘리의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에서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한나는 자식이 기쁨이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식을 얻는 것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엘리의 아들들은 결국 죽음의 길로 들어섰고 돌아오지 못하는 결과를 갖게 되었습니다.
2015년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삶에서 가장 중요함을 우리들의 이웃에서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과일 몇 상자, 후원금 또는 복지혜택 같은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 살아가기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기쁨 또한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만들기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2015년 마지막을 보내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2015년을 살기 원합니다.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시어 꼭 이루게 해주세요.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