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2:1-17
찬송 : 85장
날짜 : 2014년 11월 30일 주일예배
요약 :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자.

서론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식이 없고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하여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으로 사무엘을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사장 엘리의 제자가 되도록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한나가 서원기도의 내용대로 행동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한나의 기도와 그 뒤에 등장하는 엘리의 아들들을 비교하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한나의 기도(1-10)

한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찬양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무엘상 1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한나는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나의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이런 한나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1절을 보면 한나의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기쁨은 자신이 자식을 얻지 못했던 상황에서 자식을 얻었으니 자신의 기쁨이 사무엘로 인한 기쁨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사무엘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사무엘을 낳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나는 자신의 마음만 기쁨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뿔이라는 것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긍적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자존심, 영광 등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나의 고백에서도 자신의 상황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바뀌었고 자신의 자존심이 높아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나는 원수들 즉,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마음껏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바로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야기 합니다. 2절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유일한 신이시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직한 반석이라는 고백입니다.

3절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계속 고백되고 있습니다. 3절에서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며 행위를 저울에 다는 분이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여호와가 지식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시 지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왕이 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지식이었습니다. 지식을 갖고 싶어 하는 왕들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지식으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왕의 덕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기도에서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행위를 저울에 다시는 분이시라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지식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능력도 있으신 분이라는 고백이 4절부터 8절까지 이어집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바꾸실 수 있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과 경험하지 못하는 자들을 바꾸십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배부른 자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하나님을 경험한 굶주린 자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가 있는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죽음과 삶을 메리즘이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메리즘이라는 것은 상반되는 두 개의 개념을 통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하는 기법입니다. 예를 들면, 하늘과 땅, 어린부터 아이, 헬라인이나 유대인, 낮과 밤 등등입니다. 6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죽음과 삶만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으신 이유가 8절에 적혀 있습니다. 땅의 기둥들이 여호와의 것이고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우리가 고대근동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지구가 둥근 모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마치 책상처럼 생겼다고 생각 했습니다. 양쪽에 끝없는 낭떠러지가 있는 평평한 세상이 있으며 그것을 기둥들이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8절이 바로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 위에 세계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자신이 경험한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내용이지만, 한나의 기도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며,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9절부터 이어갑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지켜주시지만, 악인은 멸망을 받게 하십니다. 이 내용은 시편 1편의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의 용어를 가져와 10절을 보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 즉, 악인은 부서지게 됩니다. 그들이 부서지는 이유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벼락을 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을 하늘이 벼락을 이용하셔서 치신다는 말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강조하는 말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가나안 지역입니다. 이곳에서는 토착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알 이었습니다. 바알은 농사와 관련된 신이기었기에 하늘의 비를 내려 농사를 짓게 하고, 전쟁에서는 벼락을 내려 승리로 이끄는 신이었습니다. 즉 벼락은 바알의 능력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벼락을 쳐서 그들을 부수신다는 것은 벼락이 바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은 대표적으로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알이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지만, 부서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땅 끝까지 심판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께서 한나가 경험하였던 것처럼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의 뿔을 높이십니다. 한나의 뿔을 높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의인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사무엘서에서 왕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나의 이 말이 예언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찬양한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에게 맡기고 엘가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엘리의 아들들(12-17)

한나와 사무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1장 3절에서 잠시 언급이 되었던 엘리의 아들들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행실이 나빠’ 이 말은 여기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엘리가 한나를 평가할 때 사용하였던 말입니다 1장 16절을 보면 한나가 엘리에게 자신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때 ‘악한’ 이라는 말의 단어가 2장 12절에세 엘리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다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 보면 ‘벨리알’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무가치한’으로 번역합니다. ‘벨리알’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6장 15절에 바울이 그리스도와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사용한 단어입니다. 벨리알은 악마의 이름입니다. 사탄의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유대인들의 사상 가운데 있던 악마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노아’라는 영화에서 거인족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벨리알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엘리의 아들들에게 ‘벨리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바른성경에서 이 단어를 불량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는 엘리의 아들들은 1장 3절을 보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13절부터 이 불량자들의 행동이 어떠했는지에 설명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 대한 제사장들의 규례를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고기를 삶고 있으면 제사장의 종이 와서 세 갈래로 갈라진 갈고리를 가지고 냄비, 솥, 큰솥, 가마를 찔러 따라오는 것을 가져갔습니다. 냄비, 솥, 큰솥, 가마를 찔러 봤다면 모든 제물에 대해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기름을 태워 드리기도 전에 제사장의 종들이 와서 제사장들은 삶은 고기를 좋아하지 않고 구운 고기를 좋아한다며 가져가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제사의 방식을 따르고 난 후에 가져가라 했음에도 강제로 가져갔습니다.

이런 엘리의 아들들의 행동은 17절에서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크다”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 나온 사람들의 제물들을 자신들이 가로채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8절을 보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져온 고기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주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여호와의 제사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제사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민하’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제사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선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멸시 하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다보니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져온 고기가 제사장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은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주신 것이 제사장들의 것입니다. 순서와 절차가 분명히 있었고 그것이 지켜질 때 자신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와 절차를 무시한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 앞에 죄가 매우 컸습니다. 제사장인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사사시대라는 상황도 한 몫 크게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12절에서처럼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목적적

오늘의 본문에서 한나와 엘리의 아들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한나는 그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여인이었으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었으며, 엘리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따라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한나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엘리의 아들들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명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명확하였기에 그분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결과물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사셨습니다. 이와 다르게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다 결국 죄의 값을 치루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관계가 계속 이러한 모습으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어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시어 다시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그 큰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시면서부터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을 막기 위하여 헤롯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것이라 예상이 되는 지역의 2살 이하의 모든 아이를 죽이는 일을 하였고,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하십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명확하지는 않지만 3년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3년이라는 시간동안 예수님은 생명의 위협도 있었으며, 하시는 일에 대한 방해와,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일 등등을 하셨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쉬운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마다 사사건건 걸어오시비와 배반, 음모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세상이 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원하셨든 원하지 않으셨든 예수님은 힘과 지위를 얻게 되셨습니다.

그러니 엘리의 아들들처럼 그 힘과 지위를 얻어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은 엘리의 아들들처럼 그 힘과 지위를 이용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처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셨습니다.

결론

우리들은 죄로 오염되어버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사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집단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행동을 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유익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관계로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많은 것을 쌓는 사람들은 본문에서 보았던 것처럼 결국 부서지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른 자들은 하나님께서 뿔을 높이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부서질 것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삶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그 끝날 때까지 우리는 삶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들의 욕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살아가게 해주시고, 우리가 살아야하는 방향을 끊임없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약해지려 할 때마다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축도] 삶에서 많은 고민이 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며 살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영원히 함께 할찌어다.